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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찰,한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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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봉사
군위 삼존 석굴 깎아지른 절벽의 굴 속에 숙불을 들인 군위의 삼존 석굴은 흔히 경주 석굴암과 유사해 제2 석굴암 으로 불린다. 그러나 제2 석루암 이란 명칭은 발견 시점에 따라 붙여진 것. 조성 연대를 따지자면 신라 소지왕 15년 (493)년에 만들어진 삼존 석굴이 경주 석굴암보다 280년쯤 앞선다. 연대로 따지면 군위 삼존 석굴이 경주 석굴암의 원조인 셈이다. 삼존 석굴은 1927년 11월 한 마을 주민이 돌산 꼭대기에 밧줄을 매고 절벽을 내려가다 발견했다. 석굴 입구를 뒤덮은 칡넝쿨과 나무를 쳐내자 막혀 있던 굴이 열리고 그 안에서 1500년 전의 석불이 홀연히 모습을 드러냈다. 신라에 불교를 전한 고구려 아도화상이 숨어 불법을 닦았다는 도량이 빛을 보는 순간이었다. 그러나 삼존 석굴은 발견 뒤에도 수십년 동안 방치..
북고사 향로산 북고사(香爐山北固寺)는 전라북도 무주군 무주읍 읍내리 520번지에 위치한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무주읍내 뒷산인 향로산 중턱에 자리한 북고사는 본래 고려 공민왕 때 경월사(慶月寺)로 창건되었고, 조선 초기 새 왕조의 꿈을 펼치던 무학대사(無學大師)에 의해 새롭게 태어난 절이다. 1392년 이성계의 조선 개국을 위해 새 도읍지를 찾던 중, 천혜의 절경 무주(茂州)를 앞에 한 무학대사는 천하의 복지(福地)임에 감탄하였다. 대사는 적상산과 남북으로 마주한 향로산의 터가 허약함을 알고 그곳의 절에 탑을 세우고 절이름을 ‘북고(北固)’로 개칭하여 무주를 비보케 함으로써, 무주를 복되게 만들고 강역을 청정하게 지킬 수 있도록 하였다. 이처럼 조선왕조의 탄생과 밀..
사계 고택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34호로 지정되었다가 은농재를 포함한 고택 경내 전체를 도 기념물로 지정하여 보존·관리하고자 유형문화재 지정을 해제하였다. 현재는 충청남도 기념물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앞으로 구봉산이 바라다 보이는 전망 좋은 곳에 자리잡고 있는 은농재는 예학의 대가인 김장생이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내려 왔을 때 이곳에 머물면서 그 제자들과 학문을 연구하던 유서깊은 곳이다. 은농재가 있는 이 사계 고택은 약 2800여평의 넓은 대지에 남쪽으로부터 대문채·은농재·행랑채·안채, 그리고 그 뒤에 가묘가 일곽을 이루며 배치되어 있다. 또 안채의 왼쪽편에 나 있는 협문을 지나면 다시 안별당 건물이 있고 그 앞쪽으로 큰 연못이 있는데 이 주변에는 많은 괴목들이 우거져 풍취를 더 하여 주고 있다. 별당인..
부석사 676년(문무왕 16) 2월에 의상(義湘)이 왕명으로 창건한 뒤 화엄종(華嚴宗)의 중심 사찰로 삼았다. 『삼국유사(三國遺事)』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商船)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 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佛事)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그 뒤 귀국하는 길에 의상은 다시 선묘의 집을 찾아 그 동안 ..
청도 운문사 호거산 자락 아늑하고 정갈한 운문사 도량은 신라 원광국사, 고려 원응국사 일연스님 등 역대 걸출한 스님들이 주석하셨던 역사적인 도량입니다. 1950년대 불교정화이후 비구니 도량으로 혁신되었으며, 1958년 비구니 전문강원이 개설된 이래로 2천여 명이 넘는 졸업생을 배출하였습니다. 현재 운문사는 승가대학과 한문불전대학원, 그리고 선원 등을 갖춘 명실상부한 한국 최대 비구니 교육 도량 의 면모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생태보존 지역으로 지정된 운문사의 아름다운 자연 경관과 천년토록 넉넉히 품어주는 소나무 숲의 청정한 바람은 운문사를 찾는 이들에게 더 없는 선물입니다.
아원 고택 아원(我園)은 경신년에 지어진 경남 진주의 250년 된 한옥을 완주군 소양면 대흥리 종남산 산자락 아래 오성마을로 옮겨 이축한 한옥입니다. 우리 고유의 전통 한옥을 중심으로 현대적인 건축을 자랑하는 미술관과 생활관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원은 건축이 공학이면서 인문학임을 자랑하는 복합 문화공간입니다. 현대와 전통이 함께 어우러져 새로운 공간을 연출해 내는 나의 정원이고 우리들의 정원입니다.
완주 위봉사 대한불교조계종 제17교구 본사인 금산사(金山寺)의 말사이다. 이 절은 604년(무왕 5)에 서암대사(瑞巖大師)가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하지만 1868년(고종 5)에 보련(布蓮)이 쓴「극락전중건기(極樂殿重建記)」에 의하면 창건연대는 분명하지 않다고 전제한 다음, 신라 말기에 최용각(崔龍角)이라는 사람이 이곳에 와서 보니 세 마리의 봉황새가 절터를 에워싸고 싸움을 하므로 위봉사(圍鳳寺)라 하였다고 전한다. 1359년(공민왕 8)에는 나옹(懶翁)이 이절의 주위가 처음 보는 경승지임을 알고 크게 중창하였는데, 당시의 규모는 28동이었고 암자도 10동이나 되는 대가람이었다. 1911년에는 선교31본산(禪敎三十一本山)의 하나로 전라북도 일원의 46개 사찰을 관할하였으나, 여러 번의 화재로 인하여 지금은 그 규모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