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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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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거산 성지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삼국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 할 때직산면 수헐원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동쪽 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영롱함을 보고신령(神靈)이 사는 산이라 하여 거룩할 성(聖)자와 거할 거(居)를 써서성거산이라는 명칭을 지어 주었고 친히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도 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거산에 형성된 교우촌들 1801년 신유박해 이후의 이주기(移住期)에 형성된 성거산 소학골 교우촌과1830년대에 형성된 서들골(일명 서덜골) 교우촌은 박해시 선교사들과 신자들의피신처요 은신처였다.특히 소학골은 한 때 칼래 신부님의 사목 중심지로 삼아 활동하기도 하였던 곳이기도 하며,서들골 교우촌은 최양업 신부님의 큰 아버님인 최영렬씨가 1827년 고향 청..
구례성당
순창 성당 성령 강림 대축일에 순창성당에서 미사를 드렸다. 참 은혜로운 시간이었다. 올해 성령 칠은은 식견을 뽑았다. 한해동안 마음에 간직하고 살아야지 마음먹어본다.
부산 남천동 성당 부산교구 남천동주교좌성당은 벽과 지붕의 역할을 하는 창 전체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한 건축적 스테인드글라스의 대표적인 예다. 1991년 완공된 남천동주교좌성당은 부산이라는 지역적 특성을 고려해 바다에 떠 있는 범선 형태와 돛단배의 돛 모양을 반영했고 천국의 열쇠를 연상시키는 종탑 역시 성당의 상징적인 의미를 더해 주고 있다. 물의 이미지를 담고 있는 남천동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이와 같은 건축의 이미지에도 부합하고 있다. 조광호 신부가 디자인한 부산 남천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건축 당시 계획된 것은 아니었고 이후 커튼월을 통해 유입되는 강한 빛을 완화시키고 전례 공간의 분위기를 새로이 조성하기 위해 제작됐다. 45도 각도로 경사진 커튼월로 길이 53m, 높이 42m 총넓이 2225㎡에 이르는 ..
대구 계산성당 본당이 처음 건축된 것은 1899년[1]으로, 이 당시에는 한옥 양식으로 되어 있었으나, 지진에 의해 이 성당은 1901년 전소되고 그 위치에 현재의 서양식 성당을 세워, 1902년 12월 3일 첫 미사를 드렸다. 현재의 서양식 성당 또한 경상도 전역을 통틀어 가장 오래된 것이다. 이 점이 인정되어 1981년 9월 25일 대한민국의 사적 제290호로 지정되었다.[
사유원 성당 사유원을 한바퀴 다 돌고나면 마지막으로 만나지는 성당이다. 아주 작은 성당이라고 말하기도 그런 아주 작은 경당이다. 왜 십자가에 예수님의 머리가 없느냐는 물음에 부활하셨기 떄문이라고 누군가가 답해 주었다. 순간 난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동검도 성당
대화 성당 소속: 원주교구 주소: 강원도 평창군 대화면 중앙로 76 대화성당은 영적인 기도 공간과 성미술의 예술 공간을 잘 조화시킨 아름다운 하느님의 집이며 고향 집 같은 아늑함을 준다. 단아한 단층의 붉은 벽돌집인 대화성당은 주변 환경과 전혀 이질적이지 않다. 오히려 성당 뒤편 복층 연립주택과 통신탑이 눈에 거슬린다. 1998년에 봉헌돼 지은 지 만 20년이 된 집이지만 건축양식이나 공간 구성이 전혀 낡아 보이지 않는다. 현대인의 문화와 감성을 자극하고, 누구든지 맞이하는 따뜻한 하느님의 집으로 지어졌기에 낡아 보이지도 낯설지도 않다. 미술가 세 명이 대화성당을 꾸몄다. 한진섭(요셉) 조각가는 제대와 감실, 독서대, 십자가, 십자가의 길 14처, 성모상, 성수대, 종탑 십자가를 돌과 청동으로 빚었다. 대리석 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