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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여행이야기

터키,그리스여행 여덟째날 터키 이스탄불~인천공항

 

 일시:2015년 4월24일 금요일

 

어디에:터키 이스탄불

 

오늘은 4시기상 5시 식사 6시 출발이다...빡 세다...ㅋ 그래도 마지막 날이니 뭐 피곤하면 비행기에서 자면 되지 뭐..그러려니...한다  이제는...

 

 

다이아몬드 호텔이 영 아니었다...아침식사는 거의 못했다...먹을게 없어서...

 

 

멀리 동이 터 올라온다...호텔에서 이스탄불 시내까지는 거의 한시간이 걸렸다..

출근시간이 되면 이스탄불의 교통지옥때문에 움직일 수 가 없어서 빨리 서둘러서 나온 것이다.

 

 

드디어 이스탄불 시내에 입성이다.

 

 

천년이 넘은 성벽이다...이 나라는 100~200년 된 건물은 쳐주지도 않다고 한다..

보통 천년이 넘은 것들이 즐비하니 말이다.

 

 

 

이스탄불 시내를 가는데 수도교가 보였다...스페인 세비야에 있는 수도교와 같은 것이란다.

 

 

우리는 보스포러스해협 유람선을 타려고 나왔다.

 

 

우린 유람선을 전세내서 우선씨가 가이드를 하고 있었다...저 앞에 보이는 다리가 갈라타 다리이다..

골든 혼 동쪽의 갈라타 지구의 카라쾨이와 서쪽의 에미뇌뉘를 잇는 현재의 갈라타 다리는 총길이는 490m이고 폭은 42m이다.

양방향으로 각각 3차선 차도와 도보가 있으며 중앙에 트램 노선이 지나간다.

유람선이 다니는 다리밑은 운치있는 카페들이 부교위에 촘촘히 늘어서 있으며 다리위는 낚시꾼들이 한가롭게 낚시를 즐기고있다.

꽃누나 들이 밤에 야경을 보러 나왔던 다리인데 밤2시~4시 사이에는 저 다리 열린다고한다..큰배가 지나가기 위해서..

 

 

 

 타이타닉을 연상시키는 클래식한 엄청난 크기의 호화 여객선이 정박하고 있어 빌딩을 보는듯 하여 무척 놀랐다

우리가 탄 배는 그에 비하니 어선 과 같았다..

 

 

마 바흐체 궁전을 배경으로..

 

 

보스포러스해협은 북쪽의 흑해와 남쪽의 말마라 해를 잇는 해협으로 유럽 대륙과 아이사 대륙이 펼쳐진다.

해협의 남북 총길이는 약 30km 넓은곳의 폭이 3500m 좁은곳이 700m 깊이는 36~120m이다.

 

 

고대 중세만해도 모든 상거래는 이 해협을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어이 아니라는데

해안 양측에는 곳곳에 장관을 연출하는 역사적인 문화의 흔적이 가득하고 음식점 찻집 별장 호텔등이 있는

매우 조용한 풍경을 짧은 시간에 둘러 볼 수 있는 관광이 보스포러스 투어인듯 싶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이 한눈에 들어온다.

 

 

 

가까이에서 본 돌마바흐체 궁전

19세기 중엽인 1843~1856년에 술탄인 압둘메지트 1세가 지은 궁전으로 당시에 톱카프 궁전을 주로 사용하고 있었는데 너무 비좁고

뒤떨어진다며 새로 지은 궁전이다.

오스만제국의 힘이 쇠퇴하는 시기라서 이 궁전으로  자기들이 건재하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짓는데 5조원 정도가 들었다는데 외국에서 꾸어온 돈도 많아서 이 때문에 오스만 제국이 무너졌다고도 한다.

 

 

 

지금은 호텔로 쓰고 있는 건물..

 

 

 

이렇게 보스포러스해협 유람선 관광을 마치고..우리는 돌마바흐체궁전으로갔다.

 

 

돌마바흐체 궁전의 주 출입문앞에서..

돌마바흐체의 뜻은 가득찬 정원 이란다...돌마 가 가득찬...바흐체...정원...이다.

 

 

 

돌마 바흐체 궁전 앞에 서 있는 시계탑..

바로크 양식으로 세워진 이 시계탑의 높이는 27m이고 1890년에 착공하여 1895년에 완공 되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술탄이 공무를 보거나 각국의 대사들을 접견하였던 Selamlk 과  왕실의 가정으로 술탄과 그의 가족들이 살았던

Harem 으로 구분된다.

베르사이유궁전을 모델로 바로크 양식과 오스만 양식을 접목시켜 지은  이궁전은 1843년 짓기 시작하여 1858년에 완공된 건물로

현존하는 궁전중에 가장 화려한 궁전 중 하나라는 평을 듣고 있다.

 

 

돌마바흐체 궁전 내부 관람은 개별적인 관람이 불가능하며 시간에 따라 진행하는 언어를 선택하여 관람이 진행된다.

우리는 우리가이드가 진행을 해서 편했다..그런데 사진은 찍을 수 가 없게 되어 있어서 아쉽게도 내부 사진은 없다.

 

 

내부는 200여개의 방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인테리어 똑같은 방이 한개도 없었으며 모두 금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또한 바닥에 깔린 양탄자는 어느 사람이 평생을 짠 것도 있었고 삼대에 걸쳐서 짠것도 있었다..

정말 놀라운 일이었다.

가장 눈길은 끈것은 대연회장인 황제의 방인데 넓이가 40m*40m 이고 중앙 돔의 높이가 36m 이다.

중앙에 걸려 있는 상들리에는 영국 빅토리아 여왕이 기증한 것으로 무게가 4,5톤이고 750개의 등이 달려 있다고한다.

아쉽게도 불이 꺼져 있었다...불이 켜져 있는것을 봤다면 너무나 아름다웠을텐데..

화려한 이 궁전에 들어간 금만 해도 14톤 은은 40톤이 동원 되었다고 하고 45,000m의 면적에 방이 285개 있고

연회를 할 수 있는 홀이 46개 그리고 목욕탕이 6개 있다고한다.

 

 

아타투르크 터키 초대 대통령 무스타파 케말은 이스탄불에 머물때 이 궁전을 사용했는데 그가 죽은 1938년 11월10일 9시5분을 기리기위해

돌마바흐체 궁전의 모든 시계는 9시5분에 멈춰 있다고한다.

 

 

갈라타 다리..

 

 

돌마바흐체 궁전을 보고 이제 마지막 코스로 아아소피아 박물관엘 갔다.

 

 

이곳은 엄청나게 많은 인파로 북적였다..우리는터키 가이드가  먼저 매표를 해 두었기 때문에 바로 들어갈 수 가 있었다.

 

 

튜울립이 정말 예쁘게 피었다...색도 곱다.

 

 

성 소피아 성당은 마치 이스탄불에 산재해 있는 어느 모스크와 비슷해 보인다.

간혹 이곳을 방문한 사람들은 마주보고 있는 블루모스크와 아주 흡사하다고 느낄 것이다.

성 소피아 성당은 현재 성 소피아 박물관이라는 정식 명칭을 가지고 있지만 이곳은 최초에는 성당이었다.

 

우리는 입장하기전에 수신기를 나누어 주고 수신기를 통해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성당안에 들어서니 그 웅장함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거대한 돔을 기둥하나 세우지않고 이렇게 멋지게 완성했다니 그 시대의 공학기술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으며 현재 이곳은 지진으로 인해 돔이 기울고 있어 보수작업중이다.

 이건물 세계 7대 불가사의중에 하나라고 한다.

 

 

성 소피아 성당은 로마의 성 베드로 성당이 지어지기 전까지 규모면에서도 세계 최대를 자랑했으며 오늘날 까지도 비잔틴 건축의

최고 걸작으로 손꼽히고 있다.

비잔틴 제국 시대에 그리스도교를 처음으로 공인하고 이 곳에 거하리고 정한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새로운 도시의 큰사원으로 325년 창건했던 성 소피아 성당은 유스티니아누스 대제의 명에 따라

523년 ~537년에 다시 크게 개축 되었다.

하지만 역사의 흐름은 성 소피아 성당을 그대로 두디 않았다.

이후 1453년 오스만제국에 정복당한 이곳은 회교사원, 즉 모스크로 그 용도가 바뀌면서 성당안벽은 회칠로 덮히고 그 위에

이슬람교 코란의 금문자와 문양들로 채워졌으니 성모마리아의 모자이크는 사라졌다.

 

 

 

성 소피아 성당의 벽화중에 가장 유명한 그림이다.

위 벽화는 회칠을 벗기는 과정에서 상당 부분 훼손이 되었다.

중앙에 그리스도를 향하여 왼쪽에 성모 마리아 오른쪽엔 세례자요한이 인간의 죄를 사해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는 장면이다.

특이한 것은 예수님의 눈동자가 좌우 어느 방향이든지 보는 사람을 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 자세히 보기 위해 줌으로 당겨 찍었다..예수님만...

 

 

1934년 성 소피아 박물관이란 이름으로 명칭을 바꾸면서 복원작업이 진행되어

두꺼운 회칠이 벗겨지면서 성모마리아를 비롯한 비잔틴 시대의 화려한 흔적들이 드러났다.

저 동그란 판의 글자는 알라라는 글자란다.. 오스만제국의 유명한 서예가가 썼다고한다.

 

 

 

성당 네개의 모서리에는 천사의 그림이 있는데 세개는 눈을 다 파 버렸고 한개만이 제대로 박혀 있다.

 

 

이 기둥의 받침대는 그 옛날에도 지진에 견딜 수 있게 해 놓은 것이란다.

 

 

예수님이 중앙에 앉아 계시고 그 옆에는 조황후와 그녀의 세째 남편인 콘스탄틴 모노마쿠스 모습의 모자이크 벽화.

조 황후는 남편을 세번 바꾼것으로 유명한데 남편을 바꿀때마다 모자이크에서 그 얼굴을 지우고 새로운 얼굴을 새겨 넣었다고 한다.

성당 에서 나오는 벽면에 붙어 있는 벽화인데 뒤에 붙어 있어서 사람들이 그냥 지나칠까봐 앞에 거울을 걸어서 놓치지 않고 볼 수 있게 해 놓았다.

우선씨가 아니었으면 나도 놓치고 나올뻔 했다.

 

 

그림이 멀어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2층 중앙에 성모마리아께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계신 그림이 있다.

그 그림을 배경으로 찍은 것인데 잘 안나왔다.

 

 

이 구멍에 엄지 손가락을 넣고 끊지 않고 돌림녀서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설이 있어서

사람들이 줄서서 기다리고 있었다...난 줄서기 싫어서 그냥 패스~

 

 

 

 

 

2층 중앙에 있는 성모님께서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모습의 사진을 줌으로 당겨 확대했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와  돈주머니를 손에 들고 있는 코메네스 2세 왕후 에레네가 비잔틴 제국의 재정에 관한

두루마리를 들고 있는 모자이크

 

 

한시간 동안 성 소피아 성당을 둘러보고 나왔다...이제 이번여행은 이것으로 끝이났다...

이제 점심먹고 비행기 타러 공항으로 가면 된다.우리가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난리 북새통이었다

관광객이 정말 많다..이 돈 다 벌어서 어디에 쓸꼬...

 

 

우리는 다시 버스에 올라 식당으로 점심을 먹으러 갔다.,거리에는 사람도 많고 갈라타 다리에는 여전히 낚시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식당에 왔다..항상 메뉴는 거의 똑같다 .

빵에 샐러드에 닭고기 요리..터키는 돼지고기를 안 먹는다고 한다..이슬람교도들이 많아서 돼지고기는 구경도 할 수 없다.,

오로지 닭고기이다...빵은 여전히 맛이 있었지만 닭고기는 여전히 입맛에 안 맞았다.

율리안나가 끓여준 컵라면으로 대충 점심을 때우고 우리는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공항으로 이동을 했다..

짐 부치고 출국수속을 마치고 들어가서 한시간쯤 기다렸다가 비행기에 올랐다...

8일 동안 잠을 잘 못자고 피곤했는지 비행기에서는 잠을 잘 잤다...10시간의 비행끝에 인천공항에 무사히 내렸다..시간은 오전 9시30분..

난 비행기가 착륙하는 순간 하느님 감사합니다...하고 기도를 드렸다..

 

여행은 마음에 맞는 사람과 함께 서로를 배려하며 다녀야한다는 것을 다시한번 배웠다..

이번 여행은 여러가지로 참 배운것이 많은 여행 이었다..함께 해준 모든분들께 감사드리며 특히 데레사씨 나 사진 찍어주느라

수고많이했구요 그리고 감사했어요...

터키 그리스 여행 후기를 이렇게 마친다...끝

 

2015,4,24.금..글/사진  계절그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