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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나라 여행이야기

이탈리아 성지 순례 4일차

일시:2025년 5월24일 토요일

 

잠은 여전히 딱 5시간만 자면 깬다..참 희한한 일이다

잠을 푹 못자고 종일 돌아다니다보니 점점 피곤이 겹쳐가고 있다.

이 넘의 건강 염려증..하도 아프다보니 내 자신이 늘 염려스럽다

다른분들꼐 민폐가 될까 두려운 마음도 있고...

그래도 잘 버티고 있다..생각하며 하느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아침 먹고 8시에 출발이다..오늘은 오전 내내 버스를 타야한다.산 죠바니 로톤도 까지 이동을 해야하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는 20개의 주가 있는데 로마는 라치오주의 주도이고 로마의 수도이다.우리는 지금 로마 기준으로

동남쪽을 향해 가고 있다.라찌오 주를 벗어나서 아모르쪼주라는 곳으로 가는 사이에 산맥이 가로 놓여 있다

산맥을 중심으로 동부 서부 지역으로 나눈다.우리는 서쪽에서 동쪽으로 가서 다시 남쪽으로 내려가야한다.

 

버스를 타고 가다보면 산위에 있는 집들이 많이 보인다.

고대로부터 중세에 이르기까지 전쟁을 겪어 사람들이 산위로 피신하여 살게 되어 마을이 형성 되었다고한다

세계 1,2차 대전에서 이탈리아도 벗어 날 수 없었을테니..

 

산 꼭대기에 집들이다..집들이라기보다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도시라고 해야되나?

 

마을이라기보다는 도시에 가깝다..

 

아침일찍 출발하여 버스에서 디오니님의 재미있는 설명을 들으며 휴게소에 들러서 커피도 한잔하고 

간식도 사서 먹으며 지루함을 달래가며 산 죠바니 로톤도를 향해 가고 있는 중이다.

휴게소에 쉴때마다 제노베파는 나에게 커피를 사주겠다고했다 너무 고마웠다..벌써 4일차가 되니 일행들과

많이 가까워졌다..내 성격이 내성적이라 잘 못 사귀는 타입이지만 그래도 그나마 잘 적응하고 있는중이다.

우리는 산맥을 넘어와서 벌써 동쪽의 바다 아드리아해가 보이기 시작한다.

 

아드리아해가 보인다..바닷물이 엄청 깨끗하고 물빛이 옥빛이다..너무 아름답다..

크로아티아는 이 아드리아해를 끼고 있어 관광 수입이 엄청나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다시보니 반가웠다..

휴게소에서 쉬면서 찍은 사진이다...

 

8시에 로마 호텔에서 출발한 우리는 1시반이나 되어서야 산죠바니 로톤도에 도착을했다

숙소 마당에 있는 오상의비오 신부님 조각상이다.

시장이 반찬이라고 우리는 호텔에서 맛있는점심을 먹고 숙소에 올라가서 잠시 쉬었다가 3시반에 다시 모이기로했다.

산 죠바니 로톤도는 엄청 산속이며 해발 680m에 위치해 있어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우리는 옷을 한겹씩 더 껴 입고 비오 신부님을 만나러 출발했다.

아랫동네랑 이렇게 기온 차이가 클 줄 몰랐다.

 

비오 신부님께서는 1887년 5월25일에 가난한 시골마을 농부의 아들로 8남매중 넷째로 태어났다.

이름은 프란치스코였으며 작은 형제 카푸친 수도회에 입회하시며 비오라는 이름을 받으셨다..

이곳은 새로지은 뉴처치 새성당이다..우리는 새성당으로 먼저 갔다..

 

들어가자마자 성당의 규모에 놀랐다..파이프 오르간부터 눈에 들어왔고 스테인드 글라스가 엄청 크고 좋았는데

급히 가느라 사진으론 못 담았다..

 

파이프 오르간인것 같다..

 

성당벽에는 이런 모자이크로 된 벽화가 양쪽으로 쭉 이어졌다.

비오신부님은 1918년 9월20일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시는동안 오상을 받으셨는데

1968년 9월23일에 87세의 나이로 돌아가셨다

오상을 받으실때 딱 50년동안만 오상을 주신다고 하셨기에 돌아가실때는 오상이 다 사라졌다고한다.

50년 동안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고스란히 다 받으시고 피를 흘리시며 주위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으로 의심을 받으시고

교황청으로부터 사제직무정지까지 받으셨어도 침묵하시고 순명하신분이시다.

침묵과 순명 ..지금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도 꼭 필요한 일인 것 같다..모두 다 내가 잘났다고 하는 세상에서

순명이란 찾아 볼 수가 없다..신앙인들 조차도 ..

 

디오니님의 설명을 들으며 난 계속 반성하고 있었다..

그동안 아프다고 늘 투정 부리고 살았던 날들이 부끄러웠다..내가 언제 내 육신의 고통을 감사하게 받은적이 있는가..

아마도 한번도 없을것이다 .하느님 저에게 왜 이런 고통을 주시냐고 투정만 부렸다..

이제부터는 육신의 고통도 감사하게 받으리라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다

 

비오신부님 시신 앞에 서니 여러마음이 교차했다...하느님의 신비는 정말 우리 인간은 헤아릴 수 가 없는 것이다

그 오랜 세월이 지났음에도 어찌 이렇게 그대로 보존이 될 수 있는지...

십자가의 고통이 곧 영광이라는것을 몸소 보여주신분이시다.

알면서도 닮기 힘든 십자가의 고통이다...1차 세계대전때에는 강제 징집이 되셨다가 의과사 제대를 하셨다한다

열이 48도까지 오르는 희한한 경험을 하시며 의과사 제대를 하시게 된 것이었다.

 

카푸친회 수사님들..1995년 5월2일 시복식에 이어 2002년 6월16일 3년만에 바오로2세 교황님에 의해 시성되셨다.

 

 

카푸친의 최근의 성인,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1887-1968)는 1903년에 카푸친 형제회에 입회하여 1910년에는 사제서품을 받았다.
평생 동안 건강이 좋지 않았던 비오가 1918년에 경당의 십자가 앞에서 기도 하는 동안에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의 오상은 팔과 손과 옆구리에 기적적으로 나타났다.
특히 죄인들과 병자들을 사랑한 비오는 그들에게 봉사함으로써 남은 일생을 보냈다.
매일 미사를 드리신 다음 수시간 동안 고해 성사를 죄인들에게 주고 하느님의 자비의 도구가 되었다.
영혼의 구원뿐만 아니라 육신의 건강에도 관심을 많이 쓴 성 비오는
산 죠바니 로톤도에서 이탈리아 남부의 가장 현대적인 병원을 세웠다.
널리 인기를 얻은 비오 형제는 항상 기도하는 가난한 형제로 남고 싶어했다.
그리고 1948년에 평화와 교황님의 지향을 위하여 기도하는 사람들의 기도모임도 조직하고
수많은 사람들에게 형제적인 덕담과 영성 지도를 주었다.
기적과 거룩함, 인정과 유머감각에 가득찬 생활 끝에 비오 형제는 1968년에 죽음 자매를 만났고
2002년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의 성인, 피에트렐치나의 성 비오의 시성을 거행하셨다.
(카푸친 작은형제회홈에서)

 

새 성당에서 구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에 담은 싸이플러스 나무길...참 아름답다..

바람이 어찌나 거세게 부는지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조차 없었다.

 

구 성당까지 구경을 하고 다시 비오신부님 시신있는곳으로 가려고 찾았으나 길을 잃어 헤매다 다시 돌아왔다.

 

여기가 새성당 마당인데..

 

이곳은 비오 신부님꼐서 지으신 병원이다..고통을 더는 집이라는 이름을 가진 병원이다..

의사와 간호사 서비스등이 이탈리아 최고의 병원이라고한다. 고통이 어떤것인지 아는분이기에 

이런 병원을 지으실 수 있으셨을것이다...지금도 전세계 후원을 받아 운영을 한다고한다.

 

구 성당 건물이다..많은 순례자들이 비오 신부님을 뵈러 찾아 오고 있다.

 

아기 예수님께서 어머니의 심장을 만지고 있는 있는 이 성화는 볼떄마다 내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성모어머니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을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진다.

 

우리는 이곳에서 미사를 드렸다.

 

살아생전 비오 신부님께서는 과거와 미래를 보셨다고한다 아픈몸으로 사람들이 편지를 보내면 

비서가 읽어주고 특별한 편지는 다시 읽으시고 치유의 기적을 베푸셨다고한다

그래서 지금도 순례자들이 비오 신부님께 소원의 편지를 써서 놓고 가곤한다..

나도 비오신부님꼐 편지를 써서 통에 넣고 왔다.

 

비오신부님께서 거처하시던 작은방이다.

 

신부님 방문은 아주 작았다..비오 신부님 키가 작으셨기 때문일까?

신부님 방문  위에 붙어 있는 글귀이다...번역하면 십자가의 길은 늘 준비 되어 있다.그 다음에 또 한소절이 있는데 

기억이 안난다..ㅎㅎ

 

비오 신부님꼐서는 입으셨던 수도복이다

 

비오신부님은  출생 다음날인 26일 프란치스코 라는 세례명으로 유아세례를 받았고, 어려서부터 매일미사에 참례하고

기도와 묵상을 즐겨하였다. 10살 때에 그는 사제가 되고 싶다는 소망을 부모에게 말하였고,

아버지는 아들의 신학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일하러 갔다.

  12살 때 첫 고해와 첫영성체를 한 그는 아버지의 도움으로 마을의 사립 중학교에 들어갔다.

그리고 1903년 1월 6일 16세의 어린 프란치스코 포르조네는 모르코네에 있는 카푸친 작은 형제회에 입회하여

같은 해 1월 22일 수련복과 함께 비오라는 수도명을 받았다.

그 뒤 1907년 1월 27일에 종신 서원을 하였고,1910년 8월 10일 23세의 나이로 베네벤토의 주교좌성당에서 사제로 서품되었다.

 

신부님 방에 있는 시계는 돌아가신 시간에 멈춰 있다.

 

비오 신부님 모습.

 

성지 마당에 있는 올리브나무들..

 

천국으로 가는 계단 같다..

 

우리가 미사를 드릴 수 있도록 수녀님 께서 준비해 주시고 계시다.

미사 전 함께 한 순례자분중에 한분이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비보를 듣게 되었다

우리는 모두 무거운 마음으로 미사를 드리고 호텔로 돌아왔다

 

우리가 미사를 드렸던 자리 뒤에 전에 신부님께서 누워계셨던 관이 보존 되어있다..

여기에 모셨다가 새성전이 건립되면서 새성전으로 옮기려고 관을 열었는데 시신이 전혀 상하지않고

그대로 있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호텔로 와서 저녁을 먹은 다음 지하경당으로가서 요아킴 할아버지를 위해 신부님과함께 

기도와 연도를 바치고 올라왔다..

마음이 무거웠지만 그래도 기도를 하고나니 조금은 마음이 나아졌다..

엄마가 돌아 가셨을떄를 생각하니 그 분의 마음이 어떨지 가늠이 되니 내마음이 더 무거웠다.

버스를 타고 오느라 지친몸을 침대에 뉘이며 오늘 하루도 보살펴 주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드리며

잠을 청했다....오늘밤은 잘 잘 수 있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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