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18년 5월25일 금요일
누가;원미동성당교우28명
어디에:프랑스 파리
좀 더 자고 싶어서 눈이 떠지질 않는데 4시반에 일어났다.
5시50분 식사 6시30분 출발이라고 한다...루르드역으로 7시 20분까지 가야한다고..
그래야 TGV를 탈 수 있다고했다...파리까지 고속열차를 타고 간다..4시간이 걸린다고 했다.
우린 루르드역에 7시에 도착을했다..그런데 광주교구 신자들이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기차를 탔는데 그분들과 좌석표가 뒤섞여 있어서 약간의 혼란이 있었지만
잘 타고 파리로 갔다.
파리에서 또 가이드를 만나고 바쁜일정을 소화해야했다..
나폴레옹의 무덤이 있는 궁전이라고 했는데 맞는지 모르겠다..
하늘은 먹구름이 몰려왔다 사라지고를 반복하고 있었는데 소나기가 한바탕 올 것 같은 느낌이었다.
점심을 달팽이 요리(에스카르고)와 쇠고기 찜을 먹었는데 여태 먹던것 중 가장 맛이 있었다.
특히 달팽이 요리에서 나오는 소스를 빵에 찍어 먹는것이 정말 꿀맛이었다.
우리는 기적의 메달 성당으로 미사를 드리러 갔다.
기적의 메달은 성모 마리아가 파리에 있는 성 빈첸시오 바오로 자비 수녀원 내 소성당에 발현하여
카타리나 라부레(Sainte Catherine Labouré) 수녀에게 직접 준 메달을 말한다.
1830년 7월 18일~19일 저녁 라부레 수녀가 처음 성모의 발현을 목격하였고 1830년 11월 27일 성모의 두 번째 발현을 목격하는데,
두 번째 발현 때 이 메달을 성모께서 라부레 수녀에게 보여 주면서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커다란 은총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로 인해 기적의 메달 성당은 소성당이지만 성모의 발현지로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신자들이 몰려드는 곳이다
여가에서 우리는 미사를 드렸다..
다른나라 사람들과 함꼐 였다...신부님께서는 순례기간 동안 매번 미사때 영성체후에 그 우렁찬 목소리로
성가를 한곡씩 불러 주셨는데 그 성가를 들을때마다 눈물이 났다.
이 날도 여지없이 성가를 불러 주셨는데 그 성가가 내마음을 울렸다.
제대위에 계시는 성모님
성당 내 제대 위에는 성모의 첫 번째 발현 장면이 그려져 있고 정면에는 메달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의 성모 마리아상이 있다.
우측에는 두 번째 발현을 조각한 모습이 있으며 그 밑에는 사망한 후 57년이 지나 시복을 위한 시신 발굴 당시(1933년)
전혀 부패되지 않은 상태로 발견된 라부레 수녀가 모셔져 있다.
미사가 끝나고 성물방에 잠시 들른 후에 부랴부랴 바로 옆에 있는 파리외방선교회에로 갔다.
7년전에 갔을때 우리가 미사를 드렸던 그 장소이다..
하나도 변함없이 그대로이다...저 독서대에서 내가 독서를 했었는데..감회가 새로웠다.
파리외방선교회 성당제대
뒤에 정원을 보려고 했으나 문을 열어주질 않아서 못 가봤다.
어느덧 소나기는 내리고 우리는 비를 맞으며 에펠탑 인증샷을 담았다.
에펠탑은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개최된 세계 박람회를 위해 세워진 구조물로,
세계 박람회를 보러 오는 사람들이 비행기에서도 박람회 위치를 잘 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귀스타브 에펠(Gustave Eiffel)의 설계로 세워진 에펠탑은 원래는 박람회가 끝나면 철거될 계획이었다고 한다.
파리 하면 많은 사람들이 제일 먼저 떠올리는 상징이지만 당시 파리 시민들은 예술의 도시 파리와 어울리지 않는
‘추악한 철덩어리’라 하여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비판했기 때문이다.
특히 파리의 예술과 문학계 명사들의 반대가 심했다.
그래서 1909년엔 철거될 뻔하는 위기에 처했지만 다행히 최신 송신 안테나를 세우기에 이상적이라는 이유로 위기를 모면했기에 지금까지 남아 있다.
에펠탑이 처음 세워졌을 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축물이었다.
건물 전체가 철골 구조로 되어 있고 그래서 강한 바람에도 13cm 이상 흔들리지 않고, 기타 위험으로부터 탑을 잘 고정시켜 준다.
또한 철골이기 때문에 더운 여름에는 15cm가 더 길어진다고 한다.
탑의 높이는 꼭대기의 텔레비전 안테나를 포함하여 320m이고, 3층까지는 총 1,652개의 계단이 있고, 2천 5백만 개의 못이 있다.
총 무게는 10,000톤이고 4년마다 도색 작업을 하는 데 들어가는 페인트의 양만해도 엄청나다고 한다.
신부님의 모습은 참 밝으셨다.
단체 사진은 내가 찍어서 나는 없다..ㅋ
에펠탑 다음으로 우린 개선문으로 인증샷을 찍으러 갔다.
여전히 비는 내리고 있었다.
튈르리 공원에 있는 카루젤 개선문과 라데팡스에 있는 신개선문의 중간에 위치하고 있다.
8, 16, 17구의 경계에 있는 이 개선문은 높이가 50m, 폭이 약 45m로 1806년 오스텔리츠 전투에서 승리한 나폴레옹(Napoléon I)의 명령으로
건축가 장 프랑수아 살그랑(Jean-François Chalgrin)의 설계로 세워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1812년 러시아 전쟁에서의 첫 번째 패배로 공사가 중단되고, 나폴레옹의 사후인 1836년에야 루이 필립(Louis-Philippe I)의 요구로 겨우 완성된다.
나폴레옹 1세는 전쟁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자신이 만들어 놓은 이 개선문을 살아 있을 때는 통과하지 못하고,
죽은 후에 그의 유체가 개선문 아래를 지나 파리로 귀환해 앵발리드 돔 교회 아래에 매장되었다.
또한 제2차 세계 대전 때는 독일 점령에서 파리를 해방시킨 드골 장군이 이 문을 통해서 행진하기도 했다.
개선문의 벽에는 장군들의 이름이 새겨졌고, 아부키 전쟁, 터키에서의 승리, 오스텔리츠 전쟁 등 나폴레옹의 전쟁에서 영광스러운 장면들이
여러 개의 조각들로 장식되었다. 또한 개선문의 안쪽 벽에는 나폴레옹이 이끄는 부대를 지휘했던 장군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는데,
전쟁 중에 전사한 사람의 이름에는 줄이 그어져 있다. 개선문 아래에는 제1차 세계 대전에서 이름 없이 죽어간 참전 용사들을 위한 무덤이 있는데,
매년 7월 14일 이곳에서 군사 행렬을 한다. 11월 11일에는 무명 용사의 묘비 앞에서 군사들을 기억하는 행사가 있다.
개선문이 있는 샤를드골 에투알 광장(La Place Charles de Gaulle Étoile)은 12개의 대로가 별 모양으로 둘러싸 있어서 별처럼 보인다고 해서
별이라는 뜻의 에투알 광장이라고 불린다. 그 대로 중 하나가 샹젤리제 거리이다.
개선문 옥상 전망대에 오르면 에투알 광장의 모습과 더불어 파리 시의 전경을 제대로 볼 수 있다.
출처;다음백과
이렇게해서 우리의 11박12일의 순례여정이 끝이 났다..
파리는 그냥 스쳐 지나가는 정도여서 좀 아쉽기는 했다..
우리는 9시 비행기를 타야했으므로 저녁은 버스에서 김밥으로 떄우고 파리 샤를드골 국제공항으로 갔다.
짐을 부치고 하는일이 이젠 여유가 생겼다...
이번에 다섯번의 비행기를 탔으니 그럴만도하다..ㅋ
참 은혜롭고 행복한 순례였다..수녀님과 신부님께서 함꼐 하셨기에 더 은혜로운 순례가 될 수 있었다.
신부님 수녀님 정말 감사합니다..신부님 정말 고생많으셨어요..
그리고 함꼐 해주신 원미동성당 교우분들께도 진심어린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감사합니다.
하느님 감사합니다.
우리 하느님께 받은 은총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더욱 열심히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노력하면서 살아요
감사합니다.
2018.5.2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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