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16년 5월28일 토요일
어젯밤에는 아주 잘자고 5시기상 6시 식사를 하고 6시30분 출발이다...
오늘도 다시 이 호텔로 돌아올 것이다...이 호텔에서 3일밤을 묵는 것이다.
6시30분 호텔에서 출발해서 2시간반에 폼페이에 도착했다..
여기서 우리는 이탈리아 현지인 로컬가이드를 만났다.
여기가 입구이다....우리는 여기서 잠시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매표소 맞은편에 있는 과일가게
이곳은 레몬이 엄청나게크다....수박만한것도 있다.
폼페이는 1997년 유네스코에 의해 지정된 세계 문화유산이자 이탈리아 내에서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 곳이다.
79년에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화산재에 묻혀 버린 폼페이는 그 원형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어 당장 어제의 일처럼 선명하게
모든 것이 보존되어 있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절대 자신의 고향인 폼페이에 대해서 말을 하지 않았다.
저주받은 도시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기 싫어했기 때문이다.
폼페이는 1748년에 본격적으로 발굴이 시작되었는데,
이 발굴 작업의 여파가 굉장해서 전 유럽에 고대 그리스풍의 유행이 새로 생기기 시작했을 정도이며
유럽의 부호들은 너도나도 이 발굴 작업에 뛰어들었다.
서유럽에서 유물, 유적은 단순한 예술품 이외에 엄청난 부를 안겨 줄 수 있는
또 다른 노다지였기 때문이다.
폼페이 지역의 인구는 약 3만 명에 육박했다.
화산 폭발의 징조는 이미 62년에 일어났고 인근 도시인 에르클라네움은 이미 폐허가 되었지만 당시 폼페이는 건재하였다.
폼페이는 로마 지도자들이 휴양지나 별장 등을 많이 지었던 곳이다.
사시사철 해가 뜨기 때문에 건강에 좋을 뿐만 아니라 겨울에도 화산의 지반열이 있어 그다지 춥지가 않았다.
기원전에 이미 이렇게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목욕탕 시설이 완비되어 있었다니 경이롭지 않을 수 가 없다.
지금 우리가 쓰는 욕조와 똑같다..
벽으로 이렇게 파이프를 연결하여 수도시설을 갖추고 살았다...
15,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7m 이상의 화산재에 파묻혀 사망하였다.
전설로 내려오던 폼페이 유적에 대한 본격적인 발굴 작업은 1748년도에 이루어졌고 현재 발굴 작업은 거의 완료된 상태이지만
곳곳은 아직 작업 중에 있다.
폼페이에서는 광장, 공중목욕탕,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집들, 대성당(법정), 원형 극장, 베티의 의사당, 작은 매음굴
그리고 도시의 대로를 볼 수 있다.
500m 아래에는 전형적인 로마 가옥들이 보존되어 있는 에르클라네움(Herculaneum)이 있다.
폼페이는 상당히 넓으며 60여 곳의 볼거리가 있다.
화석으로 남아 있는 아이의 시신..
그 대단한 도시를 한바퀴 둘러보고 기념 촬영.
폼페이 도시를 둘러보고 나오는길에 만난 후추나무 입을 뜯어 냄새를 맡아보니 정말 후추냄새가 났다..
신기한것 투성이이다.
그리고 점심을 먹으러 갔는데 또 스파게티이다...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배가 많이 고프다
그래서 먹을것이 있을때 넉넉히 먹어 두어야한다...ㅎ 스파게티 맛은 일품이었다.
이곳에서 우리가 점심을 먹었다..단체 손님만 받는 식당이란다..그래서 저녁장사는 안한다는...
점심을 먹고 우리는 쏘렌토로 가기위해 폼페이 기차역으로 갔다.
잠시후 기차는 바로 왔고 정말 다 망가진 기차였다...덜컹 거리며 30분을 가니 쏘렌토역이었는데 종착역이었다.
기차역에서 내려서 밖으로 나오니 부겐베리아가 담에 엄청 많이 피어있었다...
장관이었다...색이 어찌나 고운지..모두들 탄성을 질렀다.
쏘렌토 거리의 모습..
이탈리아는 전역 어디를 가도 골목이 이렇게 좁다.
쏘렌토는 이탈리아에서도 남쪽이기 때문에 레몬나무와 오렌지 같은 것들이 많았으며
나무들도 열대 식물들이 많이 있었다.
이곳에서 우린 한시간의 자유 시간을 얻어서 골목의 곳곳을 다니며 구경도 하고 선물도 사고 하였다.
카프리섬으로 가는 배시간이 다 되어 우리는 모였다.
뿌연 날씨로 인해서 코발트 빛이어야 할 바다물이 그렇게 아름답게 보이지는 않았다.
바닷가에는 썬탠을 하는 사람들이 즐비하게 누워있었는데 감히 사진을 찍을 수 는 없었다.
우리는 쾌속선을 타고 30분만에 카프리섬에 도착을했다.
여기가 그 아름답다던 카프리섬이다.
카프리섬에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어디론가 올라갔다...
올라가던중 작은 로터리를 만났는데 로컬 가이드말이 로터리를 이탈리아 말로 하면 지라래 라고 하여서
우리는 한바탕 웃었다..지랄해? 지라래?....하며...
이건 버스를 타고 올라가면서 찍은 사진이다.
버스에서 내려서 또 다시 한참을 걸어서 이곳으로 왔다.
여기서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데 한사람씩 타는 리프트였다...난 은근히 겁이 났지만 내색은 하지 않았다.
이렇게 혼자서 타는 리프트였다.
그러나 걱정 한 것과는 달리 하나도 무섭지 않았으며 오히려 재미있었다..
우리는 리프트를 타고 몬테 쏠라리 라고 하는 언덕으로 올라갔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면서 앞서가던 수산나가 뒤를 돌아보며 언니~~여기가 천국이야~~ 라고 했다..
난 그러게 말이야 하고 대답하면서 내자신도 감동하고 있었다..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던중에 내 밑은 완전히 꽃바다 였다..
정상에 올라서서 그 멋진 광경에 입이 다물어지지를 않았다.
말도 안돼 어떻게 이렇게 아름다울 수 가 있는거야? 이 풍경을 어쩌면 좋아~ 라고 모두들 감탄하였다.
사진으론 그 감동을 전할 수 가 없는것이 너무 안타깝다.
내려다 보이는 바닷빛은 옥색이었고....하얀 갈매기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 그 자체였다.
사진을 찍고 또 찍고 ..또 찍고...하였다...
인물 을 넣고 찍는 것은 무리였다.
이제 우리는 다시 내려간다..
이번엔 수산나가 뒤에서 내 사진을 찍어 주고 있었다...ㅋ
체리나무에 체리가 빨갛게 열려있다.
리프트에서 내려서 다시 버스를 타고 내려오면서 또 찍었다.
우리 로컬가이드이다.
카프리섬에서 이제는 나폴리 항으로 50분 쾌속선을 타고 가야한다...
난 너무 피곤해서 배에 타자마자 잠을 잤다...얼마나 잤을까 눈을 뜨니 나풀리항에 거의 다 도착했다고했다..
세계3대 미항이라고 하는 나폴리에 산타루치아 항이다...거기에 있는 누오보성이다.
나폴리는 그리스어로 새로운도시 (네아폴리스) 라는 뜻인데 이는 그리스인이 이주해 와서 건설한 도시라는 뜻이다.
이후 로마가 점령하고 후일 게르만족의 침입기에 노르만족이 지배하다가 아주,아라곤,부르봉 왕가 등
프랑스와 스페인 외세의 오랜 지배를 받았다고한다.
세계 3대 미항은 이제 옛말이 된듯했다.
자금은 그저 쓰레기가 난무하고 폭력이 난무하는 곳으로 전락한듯 보였다.
조금은 실망스러웠다....산타루치항에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말이다.
이 해변이 호주의 시드니,브라질의 리오데자네이로와 더불어 세계3대미항 이라는 말이 나온 바로 그 산타루치아 항구이다.
산타루치아란 ..어부들이 배를타고 바다로 나가면서 나폴리의 수호성인 루치아 에게 항해의 무사함을 기원하는 노래로 코트라우 가 작곡했다고 한다..
창공에 빛난별 물위에 어리어 바람은 고요히 불어오누나..
내 배는 살같이 바다를 지난다 산타루치아 산타루치아..
나폴리 사람들의 애절함이 담긴 노래 산타루치아
나폴리 민요인 오쏠레미오 노랫말은 러시아 포로수용소에서 쓰여져
이탈리아 산레모 가요제에 출품함으로 입상을해서
1등보다 더 많이 알려졌다고한다.
그렇게 나폴리까지 관광을하고 우리는 다시 1시간반이 걸려 로마로 돌아왔다.
밀이 누렇게 익은 모습 버스 안에서 찍었다.
오는길에 금강산 한식집에서 저녁을 먹고 올리브 가게에서 기념품도 사고 그리고 로마 숙소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피곤함도 잊은채 다시 우리방에 모여 남은 과일을 먹고 와인도 한잔하고는 뽕치기에 돌입을했다.
이 사람들이 피곤한데 무슨 뽕치기야..실비아를 가르쳐가며 그렇게 우리는 2셋트의 뽕치기를 마무리하고 11시쯤 잠자리에 들었다.
그런데 잠이 쉬이 들지를 않아서 뒤척이고 있었다.
다음편에 계속
2016,5,28,토요일
사진/글...계절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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