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평 성지는 이재수 난 또는 신축교안(辛丑敎案) 때 죽은 천주교 신자들의 공동묘지로 조성된 것이 그 기원이다.
이재수 난 당시 피살된 사람들은 대부분 천주교 신자들로 300~350명 정도였는데, 이들의 시신은 별도봉 밑에 가매장한 상태로 있었다.
그러다가 1903년 프랑스공사와 조선 정부의 교섭이 이루어져 황사평(黃蛇坪)을 묘지로 제공받았다.
연고가 있는 분묘는 이미 다른 곳으로 이장해간 상태였으므로 무연고 시신들만 황사평으로 이장하였다.
그 뒤 천주교 제주교구의 공동 안장지로도 사용해왔다.
1983년부터 공원묘지로 조성하는 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1990년대로 들어서면서 천주교 제주교구 100주년 사업의 일환으로 이 지역을 성역화하기로 결정하였다.
이후 무연고 묘지를 정리하고, 이재수 난과 관련된 희생자들의 묘를 옮겨오고,
파리외방선교회와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을 위한 공덕비와 김기량 펠릭스 베드로 순교비 등을 세움으로써 1998년에 마무리하였다.
디지털제주문화대전 발췌..
2016,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