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2015년 8월19일 수요일
어디에:부소담악,육영수여사 생가,시인 정지용생가.옥화자연휴양림
누구와:옆지기,효숙,수산나.마르타,나
날씨;약간 구름이낀날...
이제는 연중행사가 되어버린 말만휴가인 그냥 여행이다.
어떻게 하다보니 팀이 짜여져 버렸다.매년 같은 사람과 가다가 이번엔 마르타가 합류하였다.
4시부터 일어나 짐을 챙기고 5시20분 마르타를 태우고 10분후 수산나를 태우고 인천을가니 6시다
숙이를 태우고 뻥뚫린 길을 휴게소 한번 안들리고 옥천으로 바로 달려 9시10분 옥천군 군북면 추소리에 도착했다.
추소리는 강원도 산길을 가는 것처럼 구불구불한 산길을 넘어서야 도착 할 수가 있었다..
후미진 산골이었다..이미 공기도 다르고 냄새도 달랐다..아우~~~좋다...
경치는 어디로 갔던지 그냥 여기에 있는것만으로도 좋다...아니 떠나왔다는것이 좋은것 같았다.
인터넷검색을 할때 멋지게 보였던 부소담악은 가뭄으로 인해 물은 빠지고 녹조까지 끼어
나에게 실망을 안겨줬다. 처음엔 입구를 잘못들어 아랫길로 들어서서 이런 사진을 찍을 수 밖에 없었다.
인터넷에서 봤던 사진을 찍으려면 산 꼭대기로 올라가야한다.
다시 뒤돌아 큰길로 올라가서 길을 물어 찾아가기로 하였다..
근처에서 뱅뱅돌며 입구를 찾느라 헤매었다. 대청호반오백리길중에 한곳이다.7구간..
드디어 찾았네...이쪽길로 가는 거였구나...
일단 길은 찾아 놨으니 아침밥을 먹자...10시가 다 되어 가는 시간이어서 배가 고파오고 있었다.
정자에 자리를 깔고 마르타가 해 온 찰밥으로 숙이가 해온 김치에 내가 해간 나물로 아침밥을 먹었다.
맛이야 말해 무엇하리...너무 맛있어서 옆사람이 어디로 가도 모를 지경이었다.
커다란 느티나무가 그늘을 만들어주고 시원한 바람마저 불어오니 금상첨화였다...
누워서 낮잠이라도 한잠 자면 정말 좋을 것 같았지만 우리는 부지런히 일어나서 부소담악으로 향하였다.
추소리 마을은 이렇게 아담하게 산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집이 너무 예뻐서 저집에서 살고 싶다...하면서 우린 서로 쳐다보며 웃었다.
부소담악으로 가기 위해 이렇게 산길로 걸어갔다.
그리 멀지않은 300m 그리고 편안한 산길이라 걷는데는 불편함이 없었다.
가다보니 대청호 옆으로 꽃이 만발한 장승공원이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긴 계단을 올라서서 추소정이 있다.
추소정이다.
이곳에서 부소담악을 조망할 수 있다..마주 볼 수 는 없지만 호수를 내려다보며 풍류를 즐길 수 있다.
전망대로 내려 가는 길이지만 우리는 가지 않았다.
추소정에서 바라 본 부소담악의 모습이다.
대청호반에 병풍처럼 펼쳐진 기암기석의 절경이 우두커니 서 있다
기암기석의 바위들이 마치 연꽃모양으로 호수위에 떠 있는것과 같아 부소담악 이라 했단다
우암 송시열 선생이 추소리의 부소담악을 일러 소금강이라 이름지어 노래했다는 전설이 있는 곳이다
그정도로 기암기석이 하늘을 찌를듯 뾰쭉뾰쭉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 바로 옥천의 부소담악 이다
부소담악 앞에 서면 이 세상의 모든 시름이 날아가 버릴것 같은 느낌이다
부소담악은 한국의 아름다운 하천 100선중에서 당당히 6위에 올라있다 한다.
사진을 하시는분들이 선호 하는 곳이라고 하는데 난 산꼭대기까지는 못 올라갔다.
이번엔 배롱꽃을 넣어서 부소담악을 담아 보았다.
이곳이 장승공원인데 이렇게 꽃이 만발해서 너무 좋았다.
장승공원옆으로 호반길이 조성되어 있고 코스모스를 심어 한층 운치를 더했다.
아직 꽃이 피지를 않아서 좀 아쉬웠지만..
대청호의 모습
우리는 조금은 아쉬운 부소담악을 뒤로하고 다음 목적지인 옥천읍에 있는 육여사의 생가로 이동했다.
옥천 을 들어서면 걷는 길목마다 만나는 단어 '향수'
고향 마을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감각적으로 표현한 정지용 선생의 대표작이다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 란 문구는 누구나 한번쯤 문학시간에 접했을만큼 유명하다.
그래서 마을도 향수길이다..
입장료는 무료이며 대문을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사랑채이다.
사랑채 마루 한켠에 해설사들이 기다리고 있다가 관람객이 부탁을하면 안내를 해 주곤했다.
충북 옥천군 옥천읍 교동리 313번지에 위치한 "육영수 여사 생가" 는 육영수 여사가 1925년 11월에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곳이고,
부친인 "육종관" 이 옥천지역의 명가(名家) 집안인 김정승(金政丞), 송정승(宋政丞), 민정승(閔政丞) 등
삼정승이 살던집을 1918년도에 매입하여 개축한곳이라 한다.
사랑채 옆에 있는 연못이다.
이곳 "육영수여사 생가" 에서는 부친 "육종관" 과 모친 "이경령" 사이에 1남3녀가 출생하였고,
육영수 여사는 3녀중 둘째로 이곳에서 태어나, 어린시절을 보낸곳이기도 하다.
1950년 6.25 전쟁으로 피난을 간 부산에서 송재천 소위의 소개로 육준소령 " 박정희" 를 만나
그해 12월에 대구에서 부모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을 올렸고, 슬하에 1남 2녀를 두게 되었데, 장녀가 지금의 "박근혜" 대통령이기도 하다.
뒤켠의 장독대
이곳은 육여사께서 처녀시절 쓰시던 방인데 한사람이 누우면 딱 맞을 정도의 아주 작은 방이었다.
뒷곁에는 이렇게 큰 뒤주가 있었다.
99칸 한옥집에..얼마나 큰 부자였는지 실감이 나는 부분이었다.
그 옛날에 외제 자동차가 4대나 있었다고하니 얼마나 부자인가..
뒤주 옆에는 연자방아가 있었으며..
이곳이 안채이다.
담벼락 밑에 맥문동이 예쁘게 피어 있다.
육여사 배화여고시절 사진과 처녀때 놓은 수예작품이 사진으로 이렇게 남아 있다.
육여사께서는 처녀시절부터 나라사랑이 남다른분이셨던것 같다...라는 생각이들었다.
이곳 "육영수여사 생가" 안채 뒤뜰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지난 과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어
다시한번 그분들을 회고하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1963년 10월 대통령선거에서 제6대 대통령으로 당선된 "박정희 대통령" 의 부인으로
"퍼스트 레이디" 로서 11년간 내조를 했으나, 1974년 장충동 국립극장의 8.15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조총련계 "문세광" 이 쏜 흉탄에 서거하게되는 비운의 삶을 살다 가신분이기도 하다.
이곳은 정자로 올라가는 길이다.
정자 앞에는 과수원이 있었으며 고교시절 방학이면 이곳에서 책을 보셨다고한다.
정자옆으로 대나무가 우거져 있다.
정자를 둘러보고 내려와서 육여사 가족사진앞에서 사진을 찍자고 옆지기가 조르는 바람에
할 수 없이 한장 찍었다..
박대통령 일가의 행복한 모습이 사진속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이곳 "육영수여사 생가" 는 1969년 현대건설이 매입하여 전면적인 개 보수를 하면서 원래의 원형들이 많이 훼손되었고,
1974년 육영수 여사의 서거후에는 방치되어 오다가 1999년에는 건물들을 철거하여 생가터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에 옥천군에서는 육씨문중과 협의하여 옥천군에서 이 터를 매입하게 되었고,
"육영수여사 생가" 복원계획을 세워 2004년 사업비 37억으로 대지 약 3,000평, 건물 13동 을 현재와 같이 복원하게 되었다고 하며,
2011년 5월부터 지금과 같은 관람을 시작하였다고 한다.
국민들에게 사랑을 실천하고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영부인으로 살다
1974년 8.15 제29회 광복절 기념식장에서 문세광의 흉탄에 운명을 달리하신 "육영수여사"
육여사의 생가를 한바퀴 둘러보고 난 후의 느낌은 이렇게 부자집에서 자랐는데 어쩌면 그리 검소하시고 겸손하셨는지
지금 후세에 사람들이 본받아야할 점들이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여사 생가를 나와 조금만 움직이면 바로 시인 정지용의 생가이다.
이렇게 사립문으로 되어 있는 대문이다.
첫 느낌이 얼마나 정겹던지 육여사 생가를 들어 갈때와는 사뭇 다른 느낌이었다.
흙담으로 된 초가도 더 할 수 없이 정겨웠다.
초가지붕으로 지어진 이곳은 1974년에 허물어지고 1996년에 다시 원형대로 지어졌다.
그의 문학을 사랑하고 언제나 기억하는 지용회의 역할이 굉장히 컸다고한다.
엣날 시골집에 다시 온 그런 기분이다.
마음이 평화롭고 따스해진다. 엄마품속에 있는듯한 느낌..나도 이제 늙었다보다..
한 시대를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깨어있는 시인으로써 많은 이들에게 문장으로써
희망을 선물하고 감성을 일깨운 정지용 선생의 생가는 시골 외갓집을 바라보는 느낌이 들기도한다.
방안의 모습..
이곳은 언제나 방문을 활짝 열어놓아 사람들의 발길을 이끈다
왜냐면 선생의 아버지께서 한약방을 운영하셨기에 나타난 특징이라고 한다
늦은 밤이나 이른 아침 구분 없이 아픈 이들이 가장 먼저 찾아올 수 있도록 하는 따뜻한 배려.
정지용의 사진이 걸려있다.
부엌...무쇠솥에 밥을 해먹던 기억이 나서 얼른 뛰어 들어가고 싶어졌다.
손 걷어 붙히고 쌀 씻어서 저 솥에 밥앉혀 해 먹고 싶은 생각이 굴뚝 같았다.
저 지붕의 두꼐가 지나온 세월을 말해주는것 같다.
밖에서 본 생가의 모습. 향수 시비가 있다.
동네마다 이렇게 향수의 그림자들이 드리워져 있다.
향수 싯귀에 나오는 그 실개천이다.
정지용 문학관에 있는 정지용의 마네킹 ..얼마나 잘 만들었는지 진짜 사람인줄 알았다.
옷을 들춰보니 실핏줄까지 똑같게 만들어져 있었다.
정지용 생가까지 둘러보고나니 1시가 되었다..이제는 점심을 먹을 시간이다.
그래서 미리 검색을 해가지고 간 생활의 달인에 나온 물쫄면집이 가까이에 있었기에 그곳을 찾아갔다.
차로 3분거리에 있었다.
바로 이것이 물쫄면이다.
그런데 맛은 별로였다..특별한 맛인줄 알았는데 실망했다. 에이 차라리 올갱이국이나 먹을걸 하고 후회했다.
그냥 일반 잔치국수 맛이었다.
그런데 사람은 무지 많았다..다른사람들은 맛있나보다..ㅋ
점심을 먹고 사장님한테 길을 물어 과일가게에서 과일을 좀 사고 우린 숙소로 일찍 들어가기로했다.
3시에 입실이니 지금 가면 딱 맞겠다 싶었다.
옥천에서 휴양림까지는 차로 약 30분이 걸렸다.
옥화자연휴양림 그냥 산속에 통나무집이었다.
이 나무잎은 계수나무잎이다. 우리 숙소 바로 앞에 계수나무가 3그루 나란히 있었다. 하트모양의 잎이 너무 에뻐서
한장 찍어 가지고 왔다.
휴양림에는 이 길이 명품길이었다...하늘이 보이지않는 나무숲터널이다.
저녁을 일찍 해 먹고 산책을 하러 밖으로 나왔다.
아래까지 내려가서 반대쪽 숲길로 가 보았다...하늘이 보이지않을정도로 우거진 숲길이 산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어둠이 내려 어둑해지자 우리는 다시 숙소로 돌아와서 잘때까지
옥수수내기 뽕치기를 하였는데 얼마나 재미있었는지 배꼽이 빠져 나갈 정도였다.
우리는 그렇게 깔깔거리며 웃다가 잠자리에 들었다.
이렇게 휴가 첫날이 지나갔다....다음편에 계속
2015,8,19....사진/글....계절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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