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름도 쉬어 간다는 새재 바로 밑,
경북 문경시 문경읍 마원1리에 위치한 마원성지는 병인박해 당시 목숨을 잃은
박상근 마티아 등 40여명의 순교자들이 살았던 신앙의 터이다.
순교자 박상근 마티아는 문경 토박이로서 아전(하급관리)이었다.
아마도 신유박해(1801년)이후 이 지방으로 숨어든 충청도 신자듥화 접촉을 하게 되면서
지방인으로서는 비교적 빠른 시기에 입교하게 되었을 것이다
깔레 강신부의 전교 기록에 보면 문경에서 가까운 백화산(1063.5m) 넘어 중 허리에 자리잡은 한실에
교우집이 서너집 무리지어 산재하고 있었다 하는데 이 곳 교우들의 영향으로 자형(예비자)와 숙모 홍마리아 등 이 집안이 천주교를 믿게 된 것 같다
1866년 병인박해 봄 깔레 강신부의 전례기록에 나타난 박 마티아는 신앙심이 대단히 강했다.
이 지방에 와서 전교하시던 깔레 강신부님을 자기 집에 은신시켜드릴 수 있었던 것은 당시로서는 죽음을 각오한 용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친구를 통해 신부님의 신변의 위협을 전해 듣고는 새벽에 신부님을 피신시켜 드리기 위해 생전에 겪어 보지 못한 고생을 감내했다.
익숙치 않은 험한 산길에서 넘어지고 허기와 갈증을 느껴야 했다.
그러면서도 돌아 갈 것을 명령하는 신부님을 뒤로하고 돌아 설 수 없어 신부님과 함께 죽게다는 대답하는 모습 속에서
비장한 순교의 의지를 역역히 읽을 수 있다.
백화산 산중에서 이별 장면은 눈물겹다. 비록 짧은 기록이지만 이 기록속에 나타난
박 마티아는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는 훌륭한 신앙인이었다.
순교자 박 마티아는 깔레 신부님과 이별의 한을 품고 숨어지내다가 1866년 겨울 체포되었다.
마티아는 아전이었기에 문경현감과 친분이 두터워서 현감은 마티아에게 신앙을 버리면 묵인해 줄 것이라고 설득하였다.
그러나 그는 끝내 현감의 간곡한 권유도 마다하고 상주목으로 이송되어 순교했다.
때는 1866년 12월 21일 나이 서른에 장한 순교의 월계관을 쓴 것이다
(마원성지 박상근 마티아 순교비에서)
2014,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