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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지

해미 성지

 

 

 

 

 

 

 주님은 오늘날 그들을 외면하지 않으셨다. 왕릉처럼 생긴 '유해참배실'을 마련해주셨기 때문이다. 가장 미천하게 죽었지만 이젠 왕의 반열에 올랐단 말이다. 이럿듯 세상은 돌고도는 것이다.

 

 

 

자리갯돌 ...천주교박해의 형구로 사용되었던 것..

원래 읍성 옆, 개울을 건너는 돌다리였지요. 천주교도들이 얼마나 지독했던지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배교를 강요했다.

 

이 돌다리 위에 십자고상과 묵주를 깔아놓고 ' 이걸 밟고 지나가면 술과 음식을 베풀어주고 너희들을 바로 풀어준다'라고 유혹했지요.

그러나 아무도 밟고 지나간 사람이 없었습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

 

서문밖에 있는것을 지금은 해미성지로 옮겨 놓고 그 곳엔 모조품을 만들어 놓았다.

 

 

 

바로 '진둠벙'이란 곳이 이들의 무덤이다. 신자들을 꼭 묶어 둠벙에 처박아 처형하였다. 동네사람들은 '죄인둠벙'이라고 부르다가 오늘날 '진둠벙이라고 불리게 되었다.

 

옆에 십자가의 길은 순교자가 죽음을 향하는 길로 묘사되어 있다.

 

"순교자가 죽음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것을 묵상합시다."

 

 

 

죽음의 구덩이로 들어가는 그들의 심정은 오죽했을까? 그러나 천국에 들어가는 문으로 생각하고 기도하며 죽음을 떳떳이 받아들인다.

그들은 죽어가면서 "예수 마리아"를 목청껏 외쳤다. 이를 본 동네사람들은 "여우머리"라고 잘못 듣고 여우에 홀려 머리채로 들어갔다고 하여 '여숫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부드러운 곡선의 홍예문인 진남문은 읍성의 정문에 해당한다. 동헌을 향해 걷다보면 우측에 '호야나무'를 볼 수 있다. 원래 회화나무인데 충청도 사투리인 호야나무로 불리다가 거의 고유명사화 했다.

 

이 나무 가지에 천주교도들의 상투를 매달고 매질을 하고 돌로 짓이겼다고 한다. 심지어는 사람이 표적이 되어 화살로 쏘아 죽였다고 한다.

 

나무를 자세히 보면 하얗게 원이 쳐 있는 자국이 보인다. 바로 저곳에 철사를 묶었다고 한다. 원래 이곳에 가지가 길게 늘어섰다고 하는데 1940년대 태풍으로 부러졌다. 아마 나무 스스로도 자신의 행위에 견딜 수 없었나 보다.

 

천주교도들은 나무 뒷편 감옥에 갇혀 처참하게 죽어가는 신자들이 절규를 들었을 것이다. 고문소리에 신앙심은 허물어지고 배교를 해야만했다.

 

당시의 참혹한 현장은 온데간데 없고 너무나 평온한 것이 야속하게 느껴질 정도다. 이 나무에 대한 천주교의 사랑은 눈물겨운 노력은 오늘날에도 계속된다. 1989년부터 해미천주교회에서 썩은 가지는 치료했고, 영양주사까지 맞추며 대대적으로 수술을 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근처에 네그루의 후계목까지 심었다. 순교자를 살리는 심정으로 말이다.

 

 

 

해미는 천주교가 전파된 내포지방의 여러 고을 가운데서 유일하게 진영이 있던 군사 요충지였다. 한때 이순신장군도 이곳에서 훈련원교관으로 10개월을 근무했을 만큼 역사적 의미를 가진 곳이다.

 

그런 해미읍성이 천주교 박해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1866년부터 100여 년 동안 무려 3천명의 천주교 신자가 죽어갔다. 그 중 양반도 있었고, 미천한 노비, 대가집 규수댁과 몸종도 함께 순교에 동참했다. 철저한 신분제 아래 십자가는 그들을  하나로 묶는 상징물이다. 순교하기 전 양반은 자기가 부리는 노비에게 용서를 빌고 노비문서를 불살랐다고 한다. 그리고 떳떳이 주님을 향해 걸어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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