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5월11일 금요일 찬미의 날
순례 3일째..
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일어났다..
파리의 아침은 저멀리 떠오르는 태양으로 시작되었다..
호텔창으로 보이는 여명을 촬영하고 씻고 아침먹고..
오늘의 첫 방문지는 파리 외방 전교회 이다..
들어가자마자 미사가 시작되었다.
계속해서 주송은 헬레나의 몫이었으며 이날은 내가독서를 했다.
처렁처렁 울리는 성당에서 마이크가 없이 미사를 해도
말소리가 아주 잘 들렸다..
김 신부님의 강론은 늘 감동이었다.
이분이 뉘신지 잊어버렸다..
다만 생각나는 분은 앵베르 주교님 뿐이다..
파리외방전교회는 아시아의 비 그리스도교도국에 선교사를 파견하여 성당을 세우고
성직자들을 양성할 목적으로 1658년 창설되어 1664년 교황의 정식인가를 받았다
파리 외방 젼교회의 대신학교에서 오늘날까지 아시아로 4,000명 이상의 선교사가 파견되었고
현재 우리나라의 서울,대전,안동을 비롯한 6개 교구에서도 활동하고 있다.
갑자기 비가 쏟아져 우산을 쓰고 걸어야했다.
뒤의 정원은 아주 정리가 잘 되어 있었다..
아름답게..
외방순교자의길~
마차를 타고 마르세이유 성모님께 인사하고 외방 순교자의 길을 떠났다
이 성모님꼐 인사할때 마음이 어땠을까?
아무리 하느님의일을 하러 떠나는길이라고 할지라도 말이다.
성모님꼐 인사하고 이길로 떠났다
순교자의길 즉 죽음의 이르는길이 그들인들 어찌 마음 편했겠는가..
그래서 이 길은 순교자의길 이라고 이름이 붙었다고한다.
슬픈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듣고
무거운 발걸음을 기적의메달성당으로 옮겼다.
1830년 7월 18일 파리의 뤼 뒤 바크에 있는 카리따스 수녀원의 수련수녀 카타리나 라부레에게
성모마리아의 발현이 있었다. 그 후 11월 27일 과 12월말에도 발현하셨다.
카타리나 수녀는 수호천사의 인도로 성모 마리아를 만났는데, 성모 마리아가 카타리나
수녀에게 두 번째로 나타나신 곳은 수녀원 성당의 제대 위였다.
머리에는 부드럽고 흰 베일을 쓰셨고, 발 밑에는 지구의가 놓여 있었으며,
손에는 작은 십자가가 꽂힌 지구의를 들고 계셨다.
성모님은 말씀하셨다.
"이 공은 지구의 모형이다. 나는 이것을 위하여, 또 이 안에 사는 모든 사람을 위하여 기도한다.
이 빛은 내게 청하는 사람들에게 내려주는 은총을 의미한다.
그러나 많은 사람이 은총을 알지 못하리니 그것은 청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때, 카타리나 수녀는 성모 마리아를 둘러싸고 있는 타원형의 빛을 보았다.
타원형의 빛 가운데 다음과 같은 글귀가 새 겨져 있었다.
"오! 원죄 없이 잉태하신 마리아여, 당신께 날아드는 우리를 위해 받으소서."
그 때 카타리나 수녀는 어디선가 들려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똑똑히 들었다.
"이 모습 그대로 패를 주조하라. 이 패는 은총의 패로서 이것을 갖고 다니는
사람은 누구든지 큰 은총을 받게 될 것이다."
이번에는 패의 뒷면이 나타나는데 M자 위에 십자가가 있고, M자 밑에는 예수 성심과
성모 성심을 상징하는 심장이 있었으며 예수 성심은 가시관으로, 성모성심은 칼에 찔려 있었다.
잠시 후 성모 마리아는 서서히 사라지셨다.
그 후 퀠렌 대주교의 허락으로 1832년 6월 30일에
나온 최초의 패가 바로 성모 마리아의 '기적의 패'이다.
영광의 계시를 받았던 카타리나 수녀는 영원한 비밀을 간직한 채 침묵 속에 살았다.
1876년 연초에 "이해가 나에게는 마지막 해가 될 것이다"고 예언하더니, 그해 12월 31일,
"우리가 원죄 없이 잉태하신 동정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이 지당하오니 로사리오 기도를
성심껏 드리자"는 유언을 끝으로 오후 6시에 세상을 떠나시니 향년 70세였다.
루르드 보다 30년 먼저 발현 하신곳이 이곳 기적의 메달 성당이다.
기적의 메달은인간 모두에게 내려준 은총과 구원의 상징이며 메시지이다.
이 메달은 1947년7월27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자기 직분에 충실했던 침묵의성녀로
명명된 카타리나라부레 수녀의 일생과 밀접한 연관을 맺고 있다.
성모님께서 발현하신 카타리나라부레 수녀님의 시신..
기적의메달성당 제대옆에 유리관에 모셔져 계시다.
사망후57년이 지나 시복을위한 발굴당시(1933년)전혀 부패하지 않아 밀납처리 해서 모셔 놓았다.
기적의메달성당 제대
위편 벽에는 성모님의 첫번째 발현 장면이 그려져있고 정면에는 메달과 같은 모양의 성모상이 있다.
우측에는 두번째 발현모습을 조각한 성모상이 있으며 그 밑에는 카타리나라부레 수녀님의 시신이 모셔져있다.
기적의 메달성당을 나오니 비는 그쳐 있었다..
점심을 먹으러 약 5분정도 걸어갔다.
파리의 시내를 누비며..ㅋㅋ
파리사람들의 성격은 이성적이면서도 감성의 기복이 심하다고한다..
파리시내에서 볼수 없는것은 전신주,에어컨 실외기 이 사람들은 에어컨 바람을 싫어해서 아예 에어컨이 없이 산다.
차에서도 창문을 열고 다니는것을 좋아해서 오픈카를 많이 타고 다닌다.
학교에 교과서가 없다.무상급식이며 부모소득에 따라 식권이 다르다고한다.
프랑스식 사고는 오토메틱 승용차는 장애인용이라고 생각한다고한다
식당앞에서 신부님과...
달팽이요리라더니..ㅋㅋ 무늬만 달팽이요리였다...
이 식당의 직원들이 한국말을 잘해서 장난치듯이 말을걸어 좀 기분이 그랬다는 사람도 있었다..
점심을 먹고 몽마르뜨로 갔다..
쓰리꾼이 많다고 조심하라는 가이드의 말이 귓가에 맴돌았다..
사람이 정말 많긴 많았다.
화장실이 부족하여 아무데서나 갈 수가 없어서 꼭 가이드가 화장실 다녀오라할때
부지런히 다녀야한다..
그런건 정말 불편하다....
몽마르뜨 로 가는길엔 상점들이 즐비하였고 길이 꽉 막힐 정도로 사람들이 많았다.
몽마르뜨에 있는 100년된 예수성심성당이다.
여기서 잠깐 불어를 배워 보자..
인사는 봉주~~~~
감사는 맥시~
빵더 주세요는 뒤빵 실 부풀레
물 더주세요는 들로~ 실부풀레이다..ㅋㅋ
예수성심성당 제대..마침 영성체중이었다.
성당옆에 있는 수도원 건물이다..성당보다 좀더 오래되었다고한다..
몽마르뜨의 화가의거리에서..
얼핏 봐서는 그 유명한 화가의거리 같지 않았다.
별로 볼것이 없는 말로만 몽마르뜨 였던것 같다.사람들만 억수로 많은..ㅋㅋ
파리의 하늘은 잿빛이었지만 간간히 햇살이 비쳐 따갑게 느껴졌다..
파리의 시내는 숨구멍 하나없이 촘촘하게 내려다 보였다..
다음은 800년된 노틀담성당으로 갔다..
주교좌성당이다..노틀담의 곱추로 더 유명해진 성당이다..
노틀담이란 우리의 어머니란 뜻으로 성모마리아를 뜻한다.
스테인드그라스 가 너무나 정교하고 아름다웠다..
800년전에 이런것들을 만들었다니 믿을 수가 없는 일이었다.
노틀담성당의 제대이다..
앞에서 본 노틀담성당
벽면의 조각들이 정말 예술 작품들이다..
아담과 하와를 상징하는 조각물들..
1638년 루이13세가 프랑스를 성모마리아에게 봉헌이래 프랑스내에는 노트르담이라고 명명돤 성당이
수없이 많이 생겼다.그중 가장 많이 알려진 곳이 파리시내에있는 노트르담 주교좌성당이다.
이 성당은 1159년 36세의 나이로 파리 대교구장이 된 모리스 드 쉴리에 의해
1160년 에 착동된후 185년이 지난 1345년에 완공되었다.
파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딕양식의 건축물인 노틀담성당의 정문에는 3개의 문이 있는데
양편 두개의 문은 성모마리아를 표현하고 1210년에 완성되었다.
중앙에 있는것은 최후 심판의 문으로 예수의 수난에 이용된 도구들을 잡고 있는 천사들과 무릎을 꿇고
인류를 위해 중재하고 있는 성모와 성 요한에 둘러싸인채 슬픈 모습을 하고 있는 그리스도상이 좌정하고 있다.
이 건축물은 세계에서 아주 유명한 건축가가 신 아이디어로 지은 건물인데 벽에서 식물들이 자라고있다.
1889년 프랑스 대혁명 100주년을 기념하여 열린 만국박람회를 기념하여 프랑스기사 규스타브에펠이 세운 높이
300미터의 철탑인 에펠탑은 파리의 상징처럼 되어 있으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 274미터까지 오를수 있다.
89년간에 걸쳐 건조된 철탑 건조물이다.
다음은 저녁을 먹으러 한식당으로 갔다..잡채에 나물에 된장찌개에 눈이 번쩍뜨였다..
와~ 오랫만에 맛있는 밥을 먹은것 같았다...새삼 기운이 났다..
역시 한국사람은 밥을 먹어야 한다니까..
저녁을 먹은후 누이비똥 본사 건물을 지나서 개선문으로 갔다..
시간이 좀 있었으면 누이비똥에 들어가서 가방이나 하나사서 갔으면 좋았으련만 ..
어디까지나 희망사항이고..
개선문은 1806년 나폴레옹에 의해 기공되어 그의사후 준공된 세계 최대의 개선문이다.
높이 50미터 개선문의 바로 아래에는 무명용사의 무덤이 있는데 항상 등불이
꺼지는 일이 없고 헌화가 시드는 일이없다고한다.
다음은 세느강에 유람선을 타러 갔다..
오늘의 마지막 코스이다.
세느강의 길이는 980키로이며수심은 3미터 정도밖에 안되는데
밑이 판판한 바지선이라 가능하다..
세느강은 강폭을 인위적으로 늘려 놓았다고한다..
저녁떄가 되자 바람은 차지고 더군다나 강이라 바람이 세차게 불어댔다..
얼마나 추운지 우린 꽁꽁싸매기 시작했다..
이윽고 배는 출발을했다 한시간 반가량 타는 유람선이었다.
처음 보이는것이 루브르 박물관이다..
건물이 얼마나큰지 카메라에 한꺼번에 들어오질 않았다..
옛날에는 왕궁이었던것을 지금은 루브르박물관으로 쓰고 있다고 했다.
그림이 30만점이나 전시 되어 있어서 대충 보아도 일주일은 걸린다고 가이드가 알려줬다.
강가에서 사랑을 나누는 젊은이들이다...참 보기좋다..
유람선을 타고 본 노틀담성당 뒷부분이다...너무 아름다웠다.
드라마 파리의 연인을 촬영했다는 그 다리이다...다리 난간에 자물쇠들이 주렁주렁 달려있다.
우리나라 한강 만큼이나 다리가 많았다.
이다리가 가장 아름다운 다리이며 한국사람들에게는 일명 김정은 다리라고 불리운단다..
파리의연인을 촬영한 다리라서 그렇다고한다.
한시간반의 유람선관광을 마치고 우리는 기차역 파리 몽빠르나스(Montparnasse)역에서 루르드로가는 야간열차에 몸을 실었다.
테제베(TGV8527) 2등칸이라는데 3층으로 되어 있어서 한방에 6명이 들어갈 수 가있었다.
3층엔 큰실비아와 베로니카 형님이 2층엔 작은실비아와 엘리사벳이
1층엔 나와 헬레나가 자기로했다.
눕자마자 모두 잠이 들어버렸는데 난 조금 자고는 잠이 깨서 내내 못잤다..
기차는 역마다 서고 또 달렸다..
다음날 아침 7시가 되어서야 예정시간보다 40분늦게 루르드에 도착을했다..
모두들 푸석해진 얼굴로 그래도 불평 한마디 없이 일어났다..
알퐁소 기자가 깨우러 오기도전에 벌써 다 일어나 있었다..
우리가 언제 이런 기차를 타 보겠냐며 모두들 출세 했다고 한마디씩 했다.
무슨일이든 좋게 생각하면 좋은 것이다..
지금생각해도 힘은 들었지만 참 재미있는 일이었고 즐거운 경험이었음이 분명하다..
이렇게 사진까지 참 잘 찍어두었다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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