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복위 운동을 전개하다가 죽임을 당한 여섯분 중에서 유일하게 혈손(血孫)을 보전한
박팽년(1417~1456) 선생의 후손들이 모여 사는 대구 달성군 하빈면 묘골에는 박팽년 선생과 함께 사육신 모두를 모시는 육신사가 있습니다.
삼족을 멸하는 대역죄로 다스려진 선생이 혈손이 남길 수 있었던 것은 둘째 아들 박순의 아내가
대구 감영의 관비(官婢)로 내려와 아이를 낳을 때, 때 마침 여종이 같은 시기에 아이를 낳아
박순의 아내가 남자 아이를 낳으면 죽임을 당하여 박씨가문의 대가 끊어질 것을 염려한 여종이
다른 사람 몰래 자신이 낳은 딸과 바꾸어 길러 화를 면할 수 었었다고 한다.
종이라는 뜻으로 비(婢)로 이름이 지어진 그는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자라 17세 때 그의 이모부 이극균(李克均)이
경상도 관찰사로 부임하여 처가에 들렀다가 성장한 그를 보고 자수를 권했다.
성종으로부터 사면을 받고 외가의 재산을 물려받아 이름을 일산(一珊)으로 바꾸고 아버지의 고향 충청도 회덕에서
이곳으로 정착하니 이른바 순천 박씨의 대구 묘골 입향조가 되었다.
후손들이 절의묘(節義廟)라는 사당을 짓고, 박팽년의 제사를 지냈다.
그의 현손 계창(繼昌)이 어느 날 고조부의 제삿날 꿈에 여섯분의 선생들이 사당 밖에서 서성거리는 것을 보고 다섯분의 제물을 차리고 다시 제사를 지냈으며 그 후 오늘 날까지 계속 여섯분을 모시고 있다.
그 후 박정희 대통령이 전국의 충신, 효자, 위인들의 유적을 정비할 때에 이곳도 오늘날과 같이 말끔히 정비되었다.
2016,8,6..사진/계절그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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