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성지순례 3일차
일시:2025년 5월23일 금요일
그렇게 피곤한데도 새벽 3시부터 잠이 깨서는 아무리 잠을 청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도 눈을 감고 누워만 있어도 피로가 풀린다고하니 눈을 감고 5시반까지 버티다가 일어났다..
밤새 비가 내리더니 날씨가 화창하게 개었다..창문을 여니 파란 하늘과 불어오는 공기가 너무 상쾌했다..
6시반부터 식사 8시 출발이다..
로마에 와서 하루가 지났을뿐인데 계속 빵을 먹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속이 불편하지가 않았다
그리고 빵이 너무 맛있게 느껴졌다..아침에 요거트를 먹었는데 그게 잘못 될줄은 상상도 못했다..
아침을 먹고 올라와서 나갈 준비를 하는데 계속 배가 아팠다..화장실을 가도 소용이 없고 큰일 났다 싶었는데
레오 형제님이 전화가 왔다 빨리 내려오라고...할 수 없이 내려갔다
전날 디오니 형제님이 화장실이 없으니 단단히 대비를 하라고 했는데 버스를 타는 순간부터 계속 배가 요동을 쳤다
할 수 없이 레오형제님께 말을했다...다행히 착한 기사님이 커피숍에 내려줘서 큰일을 해결 할 수 가 있었는데
버스에서 나를 기다려주신 동행분들과 기사님과 레오형제님께도 너무너무 미안하고 죄송해서
얼굴을 들 수 가 없었다...그래도 다들 넓은 마음으로 이해를 해 주셔서 정말 감사했다..
평생 잊지못할 에피소드로 남을 것같다..숙소에서 우리가 디오니 형제님과 만나기로 한 장소는 한시간 정도 걸렸다
영화의 벤허의 촬영 장소로도 쓰였던 대전차 경기장 앞에 도착하니 디오니 형제님이 벌써 나와 있었다..

장미의 계절이라 길옆에 정원에 장미가 가득 피어 있어서 잠시 사진을 찍고 가기로했다.


장미가 예쁘게 피어있었지만 우리나라 장미 정원에 비하면 아주 초라한 수준이었다..
로마 전체가 박물관이라고 생각하면 우리나라가 좀 초라해 지는것 같았는데 한가지라도 나은 것이 있어서 다행이다 싶었다
이건 무슨 쓸데없는 자존심인지...약 15분간 장미밭에서 사진을 찍고 우리는 조별로 벤츠에 나누어 타고 로마 시내
벤츠 투어를 시작했다,...로마 시내는 골목이 좁아서 버스가 다닐 수 가 없다 그러니 작은 차로 다닐 수 밖에 없다.

제일 먼저 도착한 곳이 트레비 분수였다..그런데 마침 동전을 수집하고 있어서 분수를 켜 놓지를 않았다.
이 트레비 분수는 후기 바로크에 이르러 로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분수 하나를 더 갖게 되었다.
이 분수는 니콜라 살비(Nicola Salvi)의 설계와 감독으로 완성되었다.
분수가 만들어진 곳은 로마의 중심부에 해당하는 트레비 광장이다.
트레비 광장 주변에는 바로크의 가장 독특한 외관을 자랑하는 산 빈첸초 에드 아나스타지오교회가 있고,
그 뒤로 교황의 정궁으로 사용되었던 팔라초 퀴리날레 버티고 서 있다.
세 개의 길(라틴어로 tre viae)이 만나는 광장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는 트레비 광장에 가장 아름다운 분수가 들어선 것이다.

오늘날 로마를 찾는 관광객이라면 꼭 들러야 하는 명소가 있으니 다름 아닌 트레비 분수이다.
모든 여행 일정을 마친 관광객들은 마지막으로 이 분수로 달려가 동전을 손에 쥐고 분수를 등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이 영원의 도시를 방문할 수 있도록 기도하며 동전을 분수에 던진다.
트레비 분수는 로마의 가호이자 작별 인사가 되었으며, 세계 곳곳에 복제되어 로마를 느끼게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도 롯데백화점 잠실점 지하광장에 엇비슷한 것이 하나 있다.
몇년전 이곳에 왔을때 동전을 던져서 연못에 들어갔었는데 그래서 내가 다시 로마에 왔나보다
그때는 다시 로마에 올 수 있을까 생각 했었는데 다시 로마에 왔다.
로마의 휴일 영화로 더 유명해진 트레비분수 ..오늘은 동전 수거를 하는 바람에 동전을 못 던지고왔다.
동전은 못 던진 대신 젤라또 아이스크림은 먹어야한다며 레오 형제님이 사 주셨다.

그런데 이렇게 서서 먹어야했다..사람은 많고 아이스크림은 빨리 녹고...먹는것도 괴로웠다..ㅎㅎ

다음은 스페인 광장이다.
17세기에 이 광장 주변에 스페인 대사관이 자리를 잡음으로써 현재의 이름이 붙게 되었다.
전반적인 양식은 화려한 로코코 양식이다.
이 스페인 광장과 계단은 영화 ‘로마의 휴일’에 나오는 ‘오드리 햅번’이 걸어 내려왔던 곳으로
이 영화 이후부터 일반인들에게 많이 알려졌다.
그러나 원래부터 이 광장은 수많은 세계적 예술가들이 쉬어 가던 곳이었는데
괴테, 발자크, 키츠, 셸리, 바그너 등이 즐겨찾던 곳이기도 했다.

스페인 광장 에는 큰 기둥에 성모님이 계시는데 성모승천 대축일엔 소방대원들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서
성모님께 꽃을 봉헌하고 교황님께서도 꽃을 봉헌 하신다고한다..이건 좀 놀라고 감동이었다.
저 높은 곳까지 올라가서 꽃을 봉헌하다니...

로마의 휴일로 유명해진 스페인 광장의 계단 맨위에 삼위일체성당이 있다
형님이 앉아 계신 자리가 로마의 휴일에서 오드리헵번이 아이스크림을 먹던 자리이다...세월이 많이 흘렀고
영화를 찍었던 그 분들은 고인이 되었지만 그 추억은 이렇게 후대에 대대로 남아서 행복감을 주고 있으니 그 또한 대단한 일이다.

스페인 계단 정면으로 나 있는 콘도티 거리에는 세계의 명품 브랜드 숍들이 가득 차 있어 보는 이들을 한껏 매료시킨다.
특별히 쇼핑을 하지 않더라도 눈이 즐거운 곳이다. 디오니 형제는 이곳에서 사람들을 풀어 놓으면 모일 생각을 안한다고한다
우리나라 사람들 명품을 정말 좋아한다..사람이 명품이어야지..ㅎㅎ

스페인 광장에는 아래쪽에는 짐승, 윗쪽에는 사람의 모습을 갖고있는 조각배(바르차카) 분수'가 있는데
이는 이탈리아의 유명한 조각가인 베르니니의 아버지 피에트로 베르니니가 만들었다고 한다.
광장에는 17세기에 설치된 살루스티안 오벨리스크가 있고 광장 주변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카페중의 하나라고 하는 카페 그레코가 있다.

날씨가 너무 좋아 햇살은 뜨겁고 하늘은 가을 하늘처럼 파랗고 그늘에 들어가면 바람이 시원했다
그래도 햇살이 너무 뜨거워 서 있기가 힘들 정도였다.요즘에도 마차가 있다니...중세 시대로 돌아간 느낌이다.

박물관같은 로마의거리...로마 중심지에 있는 거리이다.

다음은 콜로세움으로 갔다..
플라비아누스 황제 때 세워진 것으로 원래는 플라비아누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렸다.
70~72년 베스파시아누스 황제 때 공사를 시작해 80년 티투스 황제 때
100일간의 경기가 포함된 제전을 위해 공식적으로 헌정되었다. 82년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최상층을 덧붙여 공사를 완성했다.
여분의 떠받치는 힘을 더하기 위해 적당한 언덕을 파서 세운 이전의 원형경기장과는 달리 콜로세움은
돌과 콘크리트로 세운 완전한 독립구조물로서 가로, 세로가 각각 190m, 155m에 이르며 5만 명의 관객을 수용할 수 있었다.
이 경기장에서 수천 회에 걸친 검투사 시합과, 맹수들과 인간의 싸움, 모의 해전 같은 대규모 전투장면이 실연되었다.
중세 때에는 낙뢰와 지진으로 손상되었으며 반달족에 의해 더욱 심하게 파손되었다.
대리석으로 만들었던 좌석과 장식물들은 남아 있지 않다.

다음은 판테온 신전으로갔다.
캄피돌리오 언덕에서 북서쪽을 바라보면 로마의 지붕들 사이로 바로크 시대에 세워진 성당들의 쿠폴라가
수평선을 뚫고 나오고 있다.
이곳이 바로 로마의 평지인 캄푸스 마르티우스(마르스 들판) 지역으로,
고대 로마인들이 언덕에서 로마 시가지를 내려다볼 때 가장 먼저 눈에 띈 건물은 단연 판테온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판테온의 형태가 유별나서가 아니라 판테온의 둥근 지붕이 온통 금박으로 덮여 있어
마치 태양처럼 눈부신 광채를 발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금박을 떼어다가 베드로 대성당을 짓는데 썼다니...
그래서 판테온을 성당으로 사용하므로서 더 이상의 금을 떼어가지 않았다고한다
판테온 신전을 마지막으로 로마 시내 투어를 마치고 우리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번에는 3조끼리 앉게 되었다고 모두들 신나해서 내가 사진을 찍었다..음식의 가지수도 많고 맛도 일품이었다
어디를 가나 음식은 참 맛있고 좋았다..전에 로마에 왔을때를 비교하면 하늘과 땅 차이였다
아무튼 정말 점심을 맛있게 먹었다.

우리가 점심을 먹은 식당이다..

점심을 먹고 간 곳은 로마의 주교좌 성당인 라테라노 대성당이다..
로마를 방문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장 중요한 성당은 바티칸의 성 베드로 대성당이다.
건물 규모도 엄청나게 크고 위치가 교황청과 바로 붙어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톨릭 세계에서 정한 순위로는 성 베드로 성당이 2위이고, 로마 구시가의 동쪽 끝,
바티칸에서 5.6km 떨어진 라테라노 대성당이 최고의 지위를 차지하고 있다.
성 베드로 성당은 베드로의 무덤 때문에 중요하지만 로마 교구의 주교좌는 바로 라테라노 대성당이다.
라테라노 대성당은 로마가 기독교를 인정하고 나서 처음으로 만든 정식 성당이다.
서기 324년에 이 성당을 만든 인물은 밀라노 칙령으로 기독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였다.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라테라노를 교황의 거주지로 이양한 후 교황청이 프랑스의 아비뇽으로 옮겨지기 전까지
이 자리에서 무려 1000여 년간 수많은 교황이 머물렀다.
아비뇽 유수가 끝난 후 교황이 로마로 돌아오면서부터는 바티칸이 거처가 됐으나 그 바티칸의 역사는 500여년에 불과하다.
라테라노 대성당을 가리켜 '제2의 바티칸'이라고 칭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건 틀린 표현이고, 라테라노 대성당이 바로 '바티칸의 원조'인 것이다.
로마 지하철 A 라인의 산 조반니 역에서 내리면 아우렐리우스 성벽을 지나 산 조반니 광장을 낀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의 웅장한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일반적으로는 줄여서 '라테라노 대성당'으로 불리지만 공식 명칭은 '로마와 전 세계 모든 교회의 어머니이자 수장인
대주교의 대성당, 라테라노의 가장 거룩한 구세주와 성 요한 세례자, 성 요한 복음사도의 성당'으로, 어마어마하게 긴 이름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이 성당은 산 조반니, 즉 성 요한에게 헌정된 성당이다. 원래 그리스도 구세주에게 봉헌된 이 성당은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여러 번의 화재를 겪고 소실되었다가 중세에 대대적인 재건립을 하게 되는데,
이때 세례자 요한에게 공동 봉헌됐다.
바티칸 시국 영토 밖인 로마 시내에 위치하지만 1929년 바티칸과 이탈리아 간에 체결된 라테라노 조약에 의해
성당 권역은 치외법권을 인정받는다.
라테라노라는 이름은 원래 이 자리에 있던 로마제국 초기 집정관 출신의 라테라누스 가문 궁전에서 유래했다.

로마와 가장 성스러운 라테라노 대성당, 세계 모든 성당의 어머니이자 수장'으로 번역된다.
성당 파사드 기단부에 새겨진 움브라쿨룸
우산 아래 X자로 교차하는 두 개의 열쇠는 교황을 상징한다.
우산은 교황에게 그늘을 제공하는 것으로, 바티칸 시국의 국기에도 이 문양이 사용되고 있다.
영어로 우산을 뜻하는 단어 엄브렐러는 라틴어 움브라쿨룸에서 유래했다.
라테라노 성당의 성문

성당에는 모두 5개의 청동문이 있는데 그중 가장 오른쪽의 '성스러운 문'은
올해와 같은 희년에만 개방된다.
문에는 십자가의 예수님 아래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마돈나상이 부착되어 있다.
청동제의 이 문은 서기 1300년의 희년을 맞아 제작되었지만 문에 붙은 청동상은 옛날에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서기 2000년 희년에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의뢰하여 제작한 것이다.
희년에 이 문을 통과하면서 아기 예수의 발을 만지면 복을 받는다 하여 올 연초부터 많은 순례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만들어진지 불과 24년이 지났을 뿐인데 이미 아기 예수의 발은 닳아서 빤질빤질.
현대의 가톨릭은 구복을 전면에 내세우지는 않지만 어쨌든 신자들은 복을 빌어야 하는 대상을 잘도 찾아낸다

성당 중앙 제대이다.
화려함의 극치를 이룬 성당 네이브의 천정과 바닥.
바티칸 성 베드로 성당의 천정은 돔 형이지만 라테라노 성당 천정은 직사각형이다.
성당 중앙 양쪽에는 예수의 12제자 상이 웅장하게 도열해 있다.
1703년 교황 클레멘스 11세의 제안으로 당대 최고의 조각가 12명에게 의뢰하여 만들었다.
각각의 크기가 4미터를 넘는 이 석상들은 후기 바로크 시대를 대표하는 걸작 예술작품들이다.
석상이 자리 잡은 벽감의 설계는 이탈리아의 위대한 건축가 보로미니가 맡았다.

성 마태오 조각상

성 필립보 조각상

토마스 사도

사도 요한

레오 13세 교황님의 유해

성체 제단 상단부에 황금으로 만들어진 최후의 만찬 부조가 걸려 있다.

다음으로 간 곳은 계단 성당이다.

스칼라 산타 거룩한 계단 성당
예수가 당시 로마제국의 유대 총독이던 빌라도의 법정에서 십자가형을 선고받았을 때 올라갔던 계단으로 알려진 이 계단은
해마다 수십만 명의 순례객들이 몰려 예수의 고난을 묵상하면서 발이 아닌 무릎과 손으로 올라가는 것으로 유명한 성지이다.

아직 성당의 문을 열지 않아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우리도 저 대열에 함께 서서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사진을 못 찍게 해서 안 찍었는데 검색을해서 업어 왔다 사진 주신분 감사합니다.
예루살렘에 자리해 있던 이 계단은 기독교인들에게 신앙의 자유를 처음 허용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녀가 기독교로 개종한 뒤 326년 로마로 가져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이런곳이 있다는 것도 신기했고 이렇게 보존 되어 이쓴것도 신기했다.
그래서 소중하고 또 소중하다는 생각에 사진을 찍지 말라고해서 안 찍었다..이것도 순례자의 마음 가짐의 하나이고
순교라고 생각했다..찍고 싶은데 참느라고 혼났다..

성계단 성당에서 나와 오늘의 마지막 순례지인 산타마리아 마조레 성당으로 갔다
뒷쪽으로해서 들어갔다.

우리는 또 검색대를 거쳐야 했고 들어가자마자 미사 준비를해야했다
산타 마리아 마조레는 ‘마리아’라는 이름이 붙어진 성당 중에서
가장 중요한 성당이라는 뜻이다. 이곳은 로마의 4대 성당 가운데 하나이다.
리베리우스 1세와 당시 귀족이었던 요한 부부의 꿈에 성모 마리아가 나타나 8월 5일에 눈이 내릴 것이라는 예언을 했는데
정말 눈이 내렸다.
이에 요한은 이곳에 성모 마리아를 위한 성당을 지었다. 증개축을 하며 시대별로 다양한 장식과 문양들이 덧붙여졌다.
성당의 화려한 정면부는 1743년에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것이며,
성당 위의 종탑은 중세를 통틀어 가장 높은 75m의 높이를 자랑한다.
성당의 뒤쪽, 에스퀼리노 광장(Esquilino)에 있는 오벨리스크는 식스투스 5세가 1587년에 이집트에서 가져온 것이다.
성당 앞 분수대에 있는 부조물은 포로 로마노에 있는 막센티우스 공회당에 있는 기둥을 1600년 초에 가져다 놓은 것이다.
막센티우스는 콘스탄티누스 대제(313년 기독교 공인한 황제)의 정적이다.
이곳에는 나폴레옹의 친여동생인 빠올리나 보르게제의 묘와 천재 조각가 베르니니의 무덤이 있다.

우리는 이 성문으로 들어갔다.

미사중이신 신부님 이 날 미사 강론은 멈춤에 대해서 말씀하셨다
어제 회개에 대해서 말씀하시고 오늘은 멈춤에 대해서 말씀 하신것은
회개와 멈춤에 연개성이 있는듯하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산다 생각도 바쁘고 몸도 바쁘다..
회개하고 멈추어서 나를 돌아보며 시간을 가져보는것도 내가 앞으로 신앙생활을 하는데 도움이 될 듯 싶었다
신부님 강론을 듣고 많은 꺠달음을 얻었다.

36개의 기둥으로 이루어진 산타 마리아 대성전... 콜롬버스가 남미에서 가져왔다는 금으로 장식한 천정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묻혀계시는 무덤이다..마음이 가라앉으며 경건한 마음이 들었다
수많은 인파들 때문에 서 있을 수도 없이 그냥 떠밀려서 지나가 버려 아쉬웠다..교황님 앞에서 기도를 조금더 했어야 했는데..

마조레 성당의 중앙제대이다. 제단 아래에는 아기 예수님꼐서 누워계셨던 말 구유의 성유물함이 있다고한다
이 성유물함에는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말 구유의 나무조각이 들어 있다고한다.
참으로 성스러운 곳이다...이런곳을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것 같아 참 많이 아쉬웠다...

이렇게 해서 오늘 하루의 순례를 마치고 마조레 성당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고 숙소로 돌아갔다
숙소는 어제 묵었던 그 숙소이다. 오늘밤을 자고 내일은 짐을 싸서 나와야 한다..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오는듯했다..우리는 다시 서울식당에 가서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갔는데
난 저녁을 먹을 수가 없었다..너무 힘이 든 모양이다.. 숙소에 돌아가서 준비해 온 누룽지를 끓여 먹고 잤다
그리고 또 3시에 일어났다..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