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지

성거산 성지

계절그리기. 2024. 11. 25. 21:57

고려 태조 왕건(王建)이 삼국 통일을 이룩하기 위하여 분주 할 때

직산면 수헐원에서 잠시 머무는 동안 동쪽 산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영롱함을 보고

신령(神靈)이 사는 산이라 하여 거룩할 성(聖)자와 거할 거(居)를 써서

성거산이라는 명칭을 지어 주었고 친히 이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조선시대에는 세종대왕도 이 곳에 와서 제사를 지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거산에 형성된 교우촌들

 

1801년 신유박해 이후의 이주기(移住期)에 형성된 성거산 소학골 교우촌과

1830년대에 형성된 서들골(일명 서덜골) 교우촌은 박해시 선교사들과 신자들의

피신처요 은신처였다.

특히 소학골은 한 때 칼래 신부님의 사목 중심지로 삼아 활동하기도 하였던 곳이기도 하며,

서들골 교우촌은 최양업 신부님의 큰 아버님인 최영렬씨가 1827년 고향 청양 다락골을 떠나

서울 낙동으로 이주해 살다가 다시 목천 서들골로 이주하여 살았고,

1839년의 기해박해 직후 최양업 신부님의 둘째 동생인 최선정 안드레아가 백부 최영렬의

집으로 보내져 이곳에서 잠시 성장 하였던 곳이기도 하다.

이 교우촌을 중심으로 병인박해 이후부터 계속 생겨난 교우촌들은

점점 통폐합 되었다가 1920년에 와서는 7개의 교우촌이 모두 사라지게 된다.